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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Dec 26. 2017

세종대왕이 관객들에게 바치는 음악과 꽃과 차

세종의 신악 -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in 국립국악원 예악당




일 년 중 공연 최성수기를 꼽는다면 단연 연말연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형 뮤지컬, K팝 콘서트, 클래식과 재즈 등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풍성한 송년 공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국악, 그중에서도 궁중음악과 궁중무용을 선보이는 특별한 공연이 있어서 취재해보았습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준비한 송년 공연 '세종의 신악-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입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조선시대 정악 중 최초의 한글 노래인 ‘용비어천가’를 무대 예술로 꾸며 올해 상반기에 호평을 받았던 <세종의 신악>이 국립국악원 송년공연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이 출연하고 연출에는 신선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가, 작곡에는 계성원 작곡가가 참여했습니다.




이번 공연의 소재가 되는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穆祖)에서 태종(太宗)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로 한글 창제 이후 최초의 국문시가입니다. 공연의 부제인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은 널리 알려진 용비어천가 2장의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림으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마름으로 냇물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가나니...' 


조선왕조의 창업을 송영(頌詠)한 노래, 용비어천가 2장


이번 공연에서는 용비어천가의 원문에 정악 선율을 창작해 합창으로 들려주는데요. 국립국악원에서 작곡을 통해 용비어천가를 합창으로 선보이는 것은 이번 작품이 처음입니다. 노래는 27명의 정가 가객들이 함께 정가 창법으로 무대에 올라 합창으로 선보입니다.

 음악 구성 또한 수제천, 여민락, 정대업, 보태평 등의 대표적인 정악곡을 기본으로 하면서 행사에 쓰이던 반주음악의 차원을 넘어 연주 음악으로서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악기 편성 또한 노래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했습니다.



공연장 로비에서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모형 꽃가지를 꽂은 따뜻한 차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경천근민(敬天勤民)의 의미를 담은 차로서 공연 끝 무렵 헌작 헌화 장면에서 마시게 됩니다.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뜻깊은 자리가 되도록 정성을 다하는 주최 측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까치 신령들의 제천무
산신무 : 태조의 꿈 속에 나타난 삼신모와 네 명의 산신들


가무악으로 각색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를 육룡과 백성들에게 바치며 우리나라를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해동국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공연은 당시의 의례악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를 쓴 임금 세종이 현대의 관객들에게 노래의 내용을 새롭게 연출해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까치 신령들의 제천무를 시작으로 1장 해동의 나라, 2장 천명과 개국, 3장 경천근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태조에게 금척을 하사하는 산신모
개국의 천명을 받들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작품은 태조가 천명을 받드는 대목에 중점을 두면서 후대의 왕들이 뜻을 잃지 말고 성군이 되어 덕으로 다스려야 함을 메시지로 담고 있습니다. 고려말부터 목조, 익조, 도조, 환조가 무장들로서 국토의 경계를 지켰고, 문무를 겸한 태조가 천명을 받아 개국한 후 태종에게로 이어져 사직을 안정시키는 내용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왕조 선대왕들의 영웅담은 신령들과의 교감 속에서 이루어지는데요. 종국으로는 조선의 건국이 하늘에서 천명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헌작 헌화 장면


마지막 장 '경천근민(敬天勤民)'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예악으로 천명을 받들어 문화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임금이시여 아소서 천년 옛날에 미리 정하신 한강 북에 어진 일을 쌓고 나라를 여셨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하여 힘쓰셔야 나라가 더욱 굳어질 것입니다(해령 선율 차용 - 독창, 합창과 관현악 여민락 4장 선율 차용- 남녀 이중창과 관현악)"


3장 '경천근민(敬天勤民)' 무대 모습


'세종의 신악' 공연은 이해하기 어려운 용비어천가의 원문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불러서 좀 더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서사시의 내용을 아름답게 표현한 궁중무용, 순수한 무대 공간 위에서 펼쳐지는 수묵화와 추상화 영상 등 볼거리도 가득했습니다. 관현악과 합창, 궁중무용이 한데 어우러진 웅장하고 화려한 스케일은 국악 공연에 대한 해묵은 관념을 타파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공연 끝무렵 헌작 헌화 장면에서 세종이 권하고 관객들이 함께 마시는 차(茶)는 특별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작품이 강조하는 '예악 정신'을 몸소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국립국악원 송년공연 <세종의 신악-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은 오는 12월 27일(수)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입니다. 관람료는 S석 3만 원, A석 2만 원이며 올해 마지막 문화가 있는 날인 27일(수)에는 전석 50% 할인이 되어 좀 더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있어서 즐거운 일상, 올 연말에는 세종 대왕이 관객들에게 바치는 음악과 꽃과 차(茶)를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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