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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Feb 22. 2024

우리가 혼자 여행을 못 하는 이유

[낭만 여행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에든버러 호스텔은 6인실,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도미토리룸이다. 처음 남녀가 같이 사용하는 도미토리를 이용했을 때는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때 마침 여자 둘이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 그들보다 내가 오히려 깜짝 놀라서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문 닫고 나간 버린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신경 안 쓰고 지낼만하다.


내 침대 위를 쓰던 웨일스 출신 Liz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는데, 대학을 가기 전에 유럽을 세 달 정도 여행을 해보기로 했단다. 유럽에서는 이처럼 고등학교 졸업 직후 여행을 떠나는 '갭이어'가 굉장히 보편적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맞은편 침대를 쓰던 미국에서 온 마이클은 회계사라고 하는데, 업무가 너무 고되고 또 쉴 틈이 없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유럽에 여행을 왔다고 한다.


다른 쪽 침대를 쓰는 독일 청년은 여기 에든버러가 너무 좋다면서 특히 로컬 펍의 분위기가 아주 최고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 밤 호스텔에서 진행하는 Pub Crawl에 꼭 같이 참여하자고 한다. 'Pub Crawl'은 호스텔 게스트들이 같이 모여 주변에 술집들을 떠돌아다니면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면서 노는 것으로 거의 모든 유럽 호스텔에 있는 문화이다.

(좌) 호스텔 룸메이트들과 함께, (우) 에든버러 구시가에서 Pub Crawl


맥주의 나라 독일 친구는 에든버러의 Pub Crawl이 유럽에서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 오늘 밤 나도 갈게!"라고 흔쾌히 말했더니, 다들 조금은 놀랍다는 듯이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봤던 아시안 중에 너처럼 혼자 여행 다니면서 웨스턴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말이긴 했다. 물론 최근 들어서 혼자 여행하는 비중도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혼자 여행을 가는 경우는 소수이다.


어느새 에든버러 호스텔에서는 방구석 토론이 펼쳐졌다. 주제는 바로 "왜 아시안들은 혼자 여행을 하지 못하는가?" 나는 "아마도 아시안들이 주변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단적인 예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혼자 여행을 간다고 말을 하면 가장 먼저 걱정스럽게 나온 소리가 "선생님! 그럼 혼밥 해야겠네요?" 였다고. 그들은 그게 정말 한국 고등학생들 입에서 나온 말이냐고 놀라듯이 되묻는다.


오하이오 출신 마이클은 "그건 아마도 동양인들은 자신을 사회집단에 소속되어있는 일부라고 생각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개인 스스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다소 심오한 이야기를 한다. 그밖에도 아시안들이 여행의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사진과 SNS에 집착하는 모습, 친구들끼리 여행하면서 정작 다른 외국인들과는 친구가 될 기회를 잃는 모습을 각각 이야기했다.


그러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웨일스 출신 Liz가 "그건 아시안들이 영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사실 나도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너희들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영어를 말할 때 틀리는걸 두려워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들 "그럼 너는 왜 안 그래?"라고 물었고, 나는 "그래서 아마 내가 한국에서 친구가 없나 봐. 재수 없잖아"라고 말했다. 나의 발언에 다들 웃는다. 역시 자기 비하 개그는 만국 공통인 것 같다.




본 여행기는 제가 쓴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의 에피소드 중 일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 이야기 혹은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여행이 부르는 노래'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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