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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계단이라는 흥미로운 장치

체육관 건물로 들어서면 입구에 바로 엘리베이터가 있다. 체육관은 2층이지만 계단은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처음 체육관에 가던 날, 눈앞에 엘리베이터가 보였지만 계단을 찾았다. 그래도 운동하러 간 건데 계단으로 올라가야지 싶었다. 계단실은 입구 반대편 복도 끝에 있었고 묵직한 철제 비상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열자 어둡고 폐쇄적인 분위기 때문에 들어서고 싶지 않았다. 체육관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운동은 하면서도 막상 체육관을 올라가는 계단은 사용하지 않는다.     


공간디자이너 관점에서 계단은 매력적인 장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볼 수 있는 풍경은 흥미와 호기심을 준다. 계단에 올라서는 순간 평지보다는 걸음의 속도가 느려지고, 계단참에서는 잠시 멈출 수도 있다. 같은 공간이라도 계단의 형태, 방향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이나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계단처럼 오르내리는 기능에 머물고 싶은 기능을 접목한 곳도 있다.      


나는 앉아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도심 속 계단은 그것을 관찰하기 좋다. 계단은 ‘공평한’ 시선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자신은 누군가를 관찰하고 싶어 한다. 상반되는 두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는 곳이 바로 계단이다. 내 등 뒤에 앉은 사람이 나를 관찰할 수는 있지만 나도 내 앞의 사람을 바라볼 수 있고, 높이의 차이 때문에 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도시 속 계단은 위치가 중요하다. 파리의 사크레 퀘어 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 앞 계단은 늘 사람들도 가득하다. 파리 시내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에 있고, 계단 앞 작은 광장에는 길거리 악사의 연주가 이어진다. 성당만 급히 보고 가는 사람은 없다. 성당 앞 계단에 앉아 머무는 시간까지가 성당의 추억이다. 디자인이나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바로 그 계단에 앉아 방금 본 성당의 건축물, 실내디자인, 가구디자인을 곱씹어 본다. 일행이 있다면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그 시간은 어쩌면 실제 성당에 머물렀던 시간보다 중요하다. 소화되고 흡수되는 시간이랄까? 인간의 삶에 쉼이 있어야 하고 그 쉼을 지원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난한 학생 시절 극기 훈련하듯이 도시와 도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쉼 없이 움직였던 때가 생각나 웃는다. 긴 여행을 마치고 인화한 사진 속 장면은 도대체 어느 나라였는지조차 헷갈렸다.     


한편 계단은, 장애가 있는 사람, 노약자로부터 보행의 자유를 뺏는다. 한 칸도 오를 수 없는 걸림돌이 된다. 화장실, 지하철, 병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로 진입하는 곳에는 경사로 혹은 엘리베이터라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경사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노약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안전하고 편리하다. 디자인적으로도 계단과는 다른 속도와 경험을 제공한다.      


체육관 건물에 있는 계단은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비상계단, 체육관 안에 있는 계단은 운동을 돕는 기계, 도시에 있는 계단은 멈춤, 쉼, 충전의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달동네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무거운 다리를 끌고 올라야 할 지난한 과정이고, 가파른 산길을 좀 더 많은 사람이 편히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기도 하다.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장치가 바로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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