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공간도 있는데 가까이 와서 운동하는 사람이 있다. 다칠까 봐 겁나서 나는 점점 구석으로 밀린다. 불편한 기색을 해도 상대방은 개의치 않는다. 결국 내가 다른 곳으로 옮긴다. 나는 대학 시절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의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 나오는 근접학(Proxemics)을 배웠다. 저학년 전공 교양 수업 시간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다지 흥미롭다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근접학을 떠 올리게 하는 일상이 제법 있다.
서울 시민이었을 때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다. 지하철이야말로 근접학의 실험실이다. 출퇴근 시간처럼 붐빌 때를 제외하면 7인석의 경우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양쪽 끝에 먼저 앉고, 그다음 중앙에 앉는다. 세 곳이 채워지고 나서야 다음 사람이 그사이 공간에 앉는다. 길거리의 벤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중앙에 앉았다가도 누군가가 오면 자연스럽게 한쪽 끝으로 움직인다. 체육관에 있는 7대의 러닝머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양쪽 끝에 있는 기계를 가장 먼저 선택하고, 세 번째 사람이 가운데 기계를 사용한다. 기계가 모두 비어있는데 굳이 내 옆자리에 누군가 올라서면 왠지 불편하다.
이 모든 행위는 홀이 근접학에서 말한 ‘거리’의 문제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특별히 친근한 경우가 아닌 경우 우리 몸 주변에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홀에 의하면, 45cm~1.2m 정도의 개인적 거리, 1.2m~ 3.6m 정도의 사회적 거리, 3.6m~9m 정도의 공적인 거리가 필요하다. 시비가 붙어 싸우는 모습을 보라. 자신의 얼굴이나 손을 들이밀어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고, 상대방은 불편하거나 위협을 느낀다.
적절한 거리의 기준이 나라,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할 때 나는, 미국, 유럽인들은 나보다 강하게, 중국, 터키인들은 나보다 약하게 개인적 거리를 확보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미국이나 유럽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그 점을 주의했고, 중국, 터키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종종 불편했다. 서울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독일 친구는 사적인 공간을 아무렇지 않게 침범해 들어오는 한국 사람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과 충주를 자주 왕복하는 나는 두 도시에서도 차이를 느낀다. 충주의 마트 계산대에서, 뷔페식당의 배식대에서, 은행의 ATM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서는 타인 때문에 종종 당황한다. 당황해서 물러서면 또 그 공간으로 들어선다.
코로나19는 나라, 지역, 문화를 뛰어넘어 일정한 거리(사회적 거리, 물리적 거리)를 둬야 안전하다는 현상을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유지돼 오던 근접학 데이터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체육관에서의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없어지기에는 지속된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오래 지속된 현상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