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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체육관 리노베이션

체육관을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체육관이 간략한 리노베이션을 했다. 열흘 정도 체육관을 가지 못했지만, 열흘 뒤 체육관은 한결 쾌적해졌다.     

 

우선 안내 데스크의 위치가 변했다. 기존에는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안내 데스크가 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에게도,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당황스러운 위치와 거리였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사람에게는 일종의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이를 ‘감정의 필터링’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훅 들어와 친근감을 표현하면 어색해서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것도 그런 감정의 필터링이 될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의 필터링은 주로 한옥에서 생긴다. 목재 대문의 끼익 소리를 들으며 내부로 들어설 때, 댓돌에 올라선 다음 신발을 벗어 돌려놓을 때, 몸을 구부리거나 몸의 방향을 바꾸는 행위가 모두 그 마음 준비를 돕는다.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면 곧장 현관과 거실이 등장하는 오늘날의 아파트가 담아내지 못한 우리네 집의 가치다.      


잘 디자인된 종교 공간도 그렇다. 속세의 공간에서 영적인 공간으로 가는 길을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한다. 일부러 동선을 길게 늘여 마음 준비할 시간을 벌기도 한다. 산속에 있는 곳도,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공간적 관점에서 볼 때, 상가 건물 꼭대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교회가 이해되지 않는다.      

체육관은 안내 데스크의 위치를 옮김으로써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여유를,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사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양쪽 모두 서로를 마주하기 전에 1~2초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안내 데스크에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특히 중요하다.      


두 번째 변화는 조명이었다. 전반적으로 조도가 높아졌다. 천정고가 높고 내부 도색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체육관은 다소 어두웠다. 조명의 개수를 늘리자 체육관은 밝게 살아났다. 실내공간에서 조명은 분위기를 따뜻하게도 하고 차갑게도 한다. 안심하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한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경우 내부 조명의 조도와 색온도를 보완한 이후 범죄율이 떨어진 통계도 있다. 지하철이 1, 2호선만 있던 나의 대학 시절, 2호선에서 1호선으로 바꿔 탈 때마다 느꼈던 왠지 모를 불안감이,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조명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체육관의 고객이 되어 리노베이션 전후를 경험하니 오래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던 때가 떠오른다. 디자이너는 설계 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사전 조사를 한다. 건물이 위치한 장소와 주변 상황, 의뢰인과 실제 사용자에 대한 조사와 관찰, 인터뷰 과정을 반복해 자료를 확보한다. 이를 통해 특정 공간과 의뢰인, 공간사용자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되고, 확보된 자료는 문서로 정리되어 프로젝트를 마칠 때까지 중요한 좌표가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내가 그 공간의 사용자가 되면 깨닫는다. 신경외과 대기실에 놓인 예쁘지만 불편한 의자, 한 걸음도 걷기 힘든데 10m는 걸어야 들어갈 수 있는 진료실, 침 맞으러 침대에 누웠는데 바로 위에서 쏘고 있는 조명 등.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 보면 디자이너로서 했던 이론적 고찰이 허무해진다.    

  

자연분만을 위해 산부인과 침대에 누워있던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분만실 디자인의 문제점이었다. 절제된 조형과 차가운 재료로 마감된 경직된 분위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침대, 지나치게 강한 조명 등, 산모가 되어 직접 침대에 누워보니 곳곳에 숨어있는 문제점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사용자 관점에서 다른 공간을 통해 경험했을 뿐, 실은 몇 달 전에 내가 설계했던 산부인과 디자인의 문제점이기도 했다. “지금 산부인과 디자인을 하게 된다면 잘할 자신 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이는 나처럼 능숙하지 않은 디자이너만의 문제는 아닌지,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설계한 강릉의 씨마크 호텔 객실 샤워실 손잡이 디자인도 ‘지나친 단순함’ 때문에 습기 찬 샤워실 안에 갇힐 뻔한 일화를 듣는다. 내가 존경하는 루이스 칸(Louis Isadore Kahn)의 건물과 공간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경험했을 때가 10배는 더 감동적이지만, 필라델피아에 있는 리처드 메디컬 리서치 빌딩처럼 사용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건물도 있다. 실내의 기온이 일정치 않고, 주변의 새들이 창문에 부딪혀 죽기 일쑤고, 미학적으로도 아쉬움이 많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국 스스로 사용자가 되어 경험의 폭을 넓히고 관찰하고 성찰해야 이런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의뢰인과의 관계가 친구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친구였던 의뢰인과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들, 내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영화 같은 사건들이 폭탄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이 인테리어 현장이다. 프로그래밍과 머리, 감각과 손재주만으로는 해결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가 태산이다. 그때마다 디자이너는 학교에서 배운 감각, 표현능력, 창의력이 아닌 인간, 존재, 관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받는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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