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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나 보다 우리

결국 시간을 넘겼다. 늦어도 9시에는 일어나 체육관에 가려고 했는데. 책상에 쌓인 서류를 결국 밀쳐내지 못했다. 트레이너와 약속을 잡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어영부영하다 시간을 놓친다. 혼자 스스로 운동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건 정말 힘들구나. PT를 마치고 나서 트레이너가, 지금 몸 상태가 좋으니 다음 날도 꼭 와서 운동하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 한마디 덕분에 다음날은 덜 게을러진다. 가지 말까, 미룰까 싶다가도 체육관으로 나선다. PT를 받는 날은 당연하고 그 외의 날에도 운동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 들었을까? 프랑스에서는 연구자가 논문 발표를 할 때 ‘나’ 대신 ‘우리’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 논문에 직접적으로 인용된 책과 글, 지도교수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을 스쳐 간 온갖 자료와 영감이 합쳐져 하나의 논문이 탄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후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람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명쾌한 답변을 듣진 못했다. 무슨 상관이랴? 나는 그 이야기가 좋았다. 유사한 상황일 때 나는 ‘나’보다는 ‘우리’라고 말한다.      


두 권의 책을 내면서, 글쓰기와 책 쓰기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죽박죽이던 제안서에서 기획안을 끄집어내는 편집주간, 덜컹거리는 문장과 문맥을 살피는 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주는 작가, 표지 및 편집을 맡는 디자이너는 명백한 공저자다. 파주에 있는 출판사 건물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를 존경하는데, 회의하러 갈 때마다 그분과 함께 하는 느낌이었다. 출판사 분들과 얘기할 때는 특히 신경 써서 ‘우리 책’이라고 말한다.     

 

책 쓰기 워크숍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혼자 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돈을 내고 워크숍을 등록했다. 편도 2시간 워크숍으로 오가는 길, 내 글을 톺아보는 시간에 글은 스스로 퇴고하고 성장했다. 어디가 막혔던 건지,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하는 곳이 어디였는지 워크숍에 가는 동안 분명해진다. 글들이 숨을 쉰다. 책 쓰기 워크숍이라는 기획과 무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기획자와 글쓰기 선생의 날카롭고 따뜻한 시선, 함께 쓰는 도반의 응원과 위로가 들어선다. 글이 책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책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쓰는 게 맞다. 


지난 학기 2학년 설계 수업, 2인 1조 팀 프로젝트를 했다. 학부제로 늘어난 인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학생들은 정말 힘들어했다. 강의평가나 간담회 때 팀 프로젝트에 대한 불만, 부당함, 불편함이 쏟아졌다. 사이가 틀어져 결국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예도 있었다. 궁합이 잘 맞은 환상의 팀은 그렇지 못한 팀의 질투, 비교 대상이 되었다. 다들 상대방보다 자기가 더 많이, 더 열심히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팀 프로젝트로 받은 성적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가면 팀 프로젝트가 필연이라는 말을 해 줘도 소용이 없다. 참고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4학년이 되어 졸업작품전을 하면서 학생들은 드디어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동료가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비로소 깨닫는다.     


논문 쓰기, 책 쓰기, 설계 수업은 물론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많아지면 좋겠다. 누군가 몰입하느라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면 손을 잡고 한 발짝 나오자고 말할 수 있는 존재, 그 존재의 힘을 믿고 때로는 미친 척 한 곳에 몰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 그들을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무수한 존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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