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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학생들과 함께 달리는 마라톤을 꿈꾼다

청년 두 명이 나누는 얘기가 들린다. 

"충주에서 마라톤 열린다는데, 같이 나가볼까?" "그래? 언젠데?"   

  

마라톤이라는 단어가 달려와 귀에 꽂힌다. 찾아보니 10월 7일에 열리는 충주사과마라톤대회다. 10월의 마라톤대회라. 가을 한복판의 충주, 그 화려한 자연의 공간을 수천 명이 함께 달리는 기분이 어떨까? 가장 짧은 코스가 5km라니 도전해 볼까? 상상이 꼬리를 문다. 나이, 체력, 체격, 무릎 관절 등등 내게는 마라톤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넘치는데, 그래도 호시탐탐 해 보고 싶은 운동이 마라톤이다.      


책꽂이에서 <마라톤 풀코스 16주 완주 프로그램(데이비드 A. 휫셋, 2006)>를 찾았다. 오래전 직원 중에 마라토너가 있었고, 그가 준 책이다. 책 앞에는 직접 붙여 놓은 동아 마라톤 일정표가 누렇게 변색된 채 붙어 있다. 직업 군인이었던 그는 발목 부상으로 퇴직했고 다시는 좋아하는 여러 운동을 못 할 거라 절망했다. 우연한 계기에 마라톤에 도전해 성공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너무 즐겁고, 재밌고, 나도 분명할 수 있을 거라며 반짝이던 눈빛이 생생하다.      


"제가 마라톤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나가는 말처럼 트레이너에게 물었는데 "당연하죠. 도전해 보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정말? 믿을 수 없다. 러닝머신 위에서 단 2분을 못 뛰는데 가능할까? 혼자는 자신 없어 지인 몇 명을 쑤셔봤지만 다들 손사래를 쳤다. 학생 몇 명에게도 말했는데 반응은 썰렁했다. 그 와중에 시간은 흘러 책에서 얘기한 16주를 확보할 수 없어졌다. 연습할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책을 다시 펼쳤다. <마라톤 풀코스 16주 완주 프로그램>에 의하면, 16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에 5km 이상 달려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책에 나와 있는 프로그램과 조언을 잘 따른 뒤 모두 풀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톤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삶의 모든 도전에 대처할 자부심과 자신감이 증가했다고 증언했다. 마라톤에 푹 빠져있는 내 가족 중 한 명도 같은 말을 했다.   

  

지난 학기 내가 만났던 학생 몇 명이 생각난다. 1학년 수업 시간, 2~3명의 남학생(내 경우에는 우연인지 모두 남학생이었다)이 맨 뒷자리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다. 만들고 실험하는 실기 수업이라 다른 학생들은 수업 시간 내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그들은 거의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늘어져 있다. 자주 가서 질문하고 조언하며 독려해 봐도 별 효과가 없다. 죽어도 싫은 곳에 억지로 등 떠밀려온 아이들 같다. 20대 청년이 아니라 80대 노인 같다. 펄펄 살아 움직여야 할 20대 청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또래의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로서 걱정과 고민이 깊다.     

 

아이들은 여러 번 변한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군 휴학 후 복학해서 휴학 전과는 다른 학교생활을 하는 남학생도 많다. 내가 지난 학기에 봤던 무기력한 친구들도 그러길 바란다.    

  

그 아이들과 함께 10월의 충주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걷다 쉬다 가더라도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을 생각한다. 그 경험으로 나도 그 아이들도 그전에 없던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 자부심 덕분에 그들의 20대가 지금보다는 신나고 재밌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친구들이 내년에는 더 많은 친구와 함께 뛰어서 그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캠퍼스의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퍼져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영부영하다가 마라톤 참가 신청을 못 했다. 트레이너도 시기를 놓쳐 문의했더니 신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트레이너는, 충주 소재 대학 학생회에 공문을 보내 참여를 유도하고 학생은 할인을 해 주는 등 프로모션을 하면 좋을 텐데, 학생들 SNS 인증샷에 상품을 걸면 홍보는 절로 될 텐데, 충주호나 수주팔봉 등을 코스로 정하면 아름다운 충주의 풍광을 알릴 수 있을 텐데, 라며 순식간에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그 얘길 들으니 뒤늦게 아쉽다. 생각해 보면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다. 그걸 모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거나 안 보일 뿐. 내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봐야겠다. 나의 학생들과 함께 달리는 마라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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