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는 자소설이 맞다

by 초록 사과 김진우

소설 쓰고 있네, 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대한 비아냥이다. 자소서를 자소설이라고 하는 말 역시 그렇다. 과열된 입시, 취업의 담벼락 앞에서 양산되는 소위 영혼 없는 자소서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이는 자소서와 소설 모두에게 모욕적인 말이다.

소설이 뭔가? 지어낸 이야기임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빠져든다. 왜일까? 허구지만 황당무계하지 않다. 일어날 수 있는 일,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일, 어딘가에서는 일어났을 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직접 겪지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꿈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글은 쉽게 쓸 수 없다. 소설가는 누구나 될 수 있는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웬만한 상상력과 치밀함으로는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다.


미래학자들은 AI가 만연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직업으로 작가, 영화감독 등을 꼽는다. 작가, 영화감독이라는 특정 직업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의 원작이 소설이나 웹툰임을 알고 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대 놓고 지어내는 SF 소설의 상상력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콘셉트로 활용된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공간 디자이너,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브랜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공무원.......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타인이 귀 기울여 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AI로 대체되지 않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자소서는 뭔가? 읽는 사람에게, 나를 궁금하게, 함께 일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다. 내가 살아온 삶 중에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단서를 찾아 경험과 기억을 뒤진다. 그중에 무언가를 건져 생생하게 서술해야 하고, 찾아낸 '무언가'와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무언가'를 엮어낸다. 그 과정에서 쓰기 전에는 몰랐던 나의 성향, 욕망, 특징, 가치관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니 자소서는 자소설이 (돼야 함이) 맞다.


시중에는 소설가가 쓴 글쓰기 책들이 무성하고, 그들이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은 자소서 작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솔직한 글이 마음을 움직인다, 글을 관통하는 제목을 제시하라, 구체적인 사례로 이야기하라, 글의 내용이 시각적으로 그려지게 하라, 첫 문장에 사활을 걸어라, 진부한 글보다 과감한 글이 좋다 등, 공감할 수 있는 조언이다.


자소서의 소재는 특별한 것일 필요 없다. 특별한 안목으로 가져올 수 있으면 된다. 디자인이나 예술 역시 창조보다는 발견에 의미를 두듯이, 글쓰기라는 창의적 행위도 마찬가지다. 배낭을 짊어지고 로마의 거리를 헤맸던 경험이 있어야만 자소서가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 걷는 길 위에서 만난 고양이 한 마리와의 교감이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자소서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모든 글쓰기가 그렇듯, 자소서 역시 자신에 대한 성찰과 만난다. 그게 없으면 소설과 자소서 모두 불가능하다는 게 흥미롭다. 우리 모두 소설가가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한(나 자신에 대한) 스토리텔러는 될 수 있고, 될 수 있어야 한다. 이왕 쓸 거라면 영혼 없는 자소서로 대충 방어하지 말고 진짜 자소설로 공격적인 첫 발을 디뎌보자. 설령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스스로를 진심으로 들여다본 글은 몸속에 남아 성장의 단초가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졸업작품전, 늘 그해가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