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당신이 꿈꾸는 두 번째 직업은?

by 쿙그민

다양한 이유로,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퇴사 결정.

그럼 앞으로 펼쳐질 인생 2막을 아름답게 장식할 직업은 무엇일까?



한동안 엄마들 사이에서 <한국 학생들의 진로- 부제: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 유행했었다. 혹자는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유포했다고 했지만,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의 은퇴 후 미래가 <치킨집> 또는 <굶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소식은 아이들에게 절망을 주었다. ‘공부도 소용없다.‘ ’ 인생은 한방이다.’라며 아이들도 장래 희망을 건물주, 돈 많은 백수, 재벌 2세(아빠가 돈이 많았으면 하는)라고 쏟아내었다.

치킨집수렴의 법칙.jpg



엄마들의 은퇴 후 직업에도 막연한 이상향이 있었다.

엄마들 사이에도 ❝아이들 대학 보내 놓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 물으면

가장 많은 대답이

❝그땐 좀 편하게 작은 카페나 하면서 지인들 불러서 여유 있게 시간 보내고 싶다.❞였다.


꿈과 열정이 있었던 3040세대에는 ❛애들이 대학 가게 되면 그때 다시 경제활동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꿈꿀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생각보다 마음을 힘들게 했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50대의 로망인 <카페 사장의 꿈>을 30대에 이뤄보기로 했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아이들이 귀가하는 2~3시 즈음엔 아이들을 맞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아이들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이런 복잡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은 자영업이라고 생각했다. 자영업을 글로 배웠다. 장사의 신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퇴사 전까지 정말 짠순이 생활로 모았던 월급과 영끌 자금으로 보증금을 내고 월세는 매출로 감당할 생각이었다.


머리로 생각한 자영업은 이랬다.

아이들 유치원에서 차량을 내리는 장소를 가게 근처로 배려해주셨고, 가게에서 일을 보던 중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맞는다. 테이블에서 아이들 숙제를 봐주기도 하고 직원들도 한가할 때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기도 했다. 일도 하고 아이도 보고.


실제로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자영업은 이랬다.

처음에는 온 가족의 즐거운 공간이었다. 아이들 놀이시설도 있었기 때문에 유치원 버스에서 카페로 바로 하원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되어도 고민이 생겼고 잘 안 되는 날은 고민이 더욱 커졌다. 손님은 몰려들 때 서로 약속한 듯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어느 날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고 다른 날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특히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서 아이들을 함께 둘 수가 없었고 부모님 댁에 부탁드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고생시킨다는 반응이 들려왔고 또다시 가치의 우선순위에서 자녀의 양육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다.


어떠한 말은 의미나 의도와 상관없이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너뜨리기도 한다. 의미 없는 타인의 말이니 상처 받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도 가슴에 박혀버린 가시는 이미 온몸에 무기력이라는 독을 퍼뜨리고 말았다.


그날 방문한 손님은 3형제를 데리고 온 엄마였다. 아이들 손님이 많은 곳이라 안전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던 직원들이 그 3형제를 주시하고 있었다. 덩치도 컸고 아이들이 무척 거칠어서 다른 아이들과 분쟁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3시간도 더 지났을 때 그 손님은 자신의 아이들이 별로 놀지 못했다며 세 명 모두 입장료를 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음식값을 마음대로 올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능한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조용히 응대했지만 더는 대화의 타협점이 없어 이전 메뉴판을 공손히 보여드렸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가격은 이전과 동일합니다.❞라는 잔잔한 응대와 함께...

화가 난 손님은 돈을 집어던졌고. 그 돈들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섬주섬 받아 돈을 정리하던 나에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뭐야! 장사를 왜 이따위로 해! 그 딴식으로 돈 벌어먹고 살지마❞


내가 어떻게 돈을 벌어먹고 살았던 것일까? 무엇을 잘못한 걸까...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했고 그 미해결과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가게에 나가면 그 모습들이 떠올랐고 점점 가는 것이 두렵거나, 손님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절실함이 없었기에 쉽게 흔들렸다.

확신이 없었기에 견뎌야 할 힘을 잃었다.


성급했던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인생 2막의 직업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자영업에 도전했고 실패했던 경험은 결국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우리가 생애의 위기를 만나는 순간, 이것이 정말 최악의 순간이고, 밑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도 알지 못했던 힘을 만나게 된다. 용수철이 튕겨나가는 것과 같은 탄성을 가지고 본래의 위치로 회복하는 탄력성, 그 힘으로 이전의 수준 이상의 성장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PTG¹(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이 제2의 직업으로 치킨집을 선택했던 것처럼, 그렇게 선택한 자영업에서 좌절과 더불어 많은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준비되지 않았던 자신과 만났고 그렇게 바닥을 찍었다. 그 지점에서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손님에게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는 말이 큰소리로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나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정도 응대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익숙해졌고 손님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아주 잠깐이라도 휴식의 시간을 즐기려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이해심은 엄마들에 대한 배려로 이어졌고, 하나둘씩 단골이 생겼다. 낯을 가렸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성격은 자영업의 경험으로 인해, 처음 만나는 어머니들, 아이들과 불편함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변화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은 이후에 만나게 될 일들의 초석이 되었다.


<인생의 두 번째 직업 찾기>는 실패했지만 실패의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 자신에 관한 탐색 과정부터 살펴가기로 했다.

실패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틈새 심리학>

PTG¹(Post Traumatic Growth): 외상 후 성장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상처를 경험합니다. 트라우마는 이러한 상처, 외상, 또는 이 상처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최근 트라우마는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되며 더 이상 낯선 용어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상처를 주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트라우마를 바라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상처를 경험한 후 적응 수준은 외상을 경험하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습니다.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 합니다.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아프게 파고들던 그 경험이 결국은 이전과는 다른 ’나‘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느끼는 이 아픔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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