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경험하는 평범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저녁 전에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좀 놀게 할 생각에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날 이미 알아본 것 같았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결국 나를 불렀다.
❝아~줌~마~, 여기 문 좀 열어주세요~요~요~❞
사실 틀린 말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그런데 매우 기분이 나빴고, 기분이 나쁜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친구의 자녀, 또는 자녀의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여 부를 때 ‘이모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조차 ‘아줌마가 해줄게’라고 하는 것이 더 편했다. 그런데 막상 타인이 나의 호칭을 아줌마라고 부르니 기분이 복잡해졌다. 더구나 <두 번째 직업 찾기> 1차 시도 실패 이후 ‘사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일이 없어졌던 상황이라 상실감이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없어지면 상실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다. 누구의 엄마로 불리기보다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아이의 유치원 친구들 모임에서 친해진 몇몇 엄마들과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야!, oo 언니로 현재까지 지내고 있고 그 덕분에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그런데, 이름 뒤에 붙는 호칭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변수였다.
무엇으로 불리길 원했던 걸까...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인가 하며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했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른 게 무슨 죄라고... 그걸 기분 나쁘게 생각하냐...❜
내가 나에게 전했던 최악의 위로였다.
어느 날, 증명서 발급을 위해 주민센터에 방문하게 되었다. 주로 인터넷으로 발급받았던 터라 무척 오랜만에 방문한 것이었다. 내 순서가 되었다. 조금 복잡한 말들이 오가는 순간 주민센터 직원분이 ❛나❜를 이렇게 불렀다.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서류는... “ 뒷부분의 내용은 어느새 지워져 갔고 <선생님>만 선명해졌다.
그녀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던 욕구가 깨어나고 있었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위계 피라미드 ¹에서 몇 단계 정도의 욕구가 충족된 것일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 안전한 환경에 대한 욕구는 충분히 충족되어 있었다. 가정이라는 견고한 틀 안에 소속되어 있고 애정의 욕구도 충족된 상태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줬던 부분에 내 심장이 반응한 것을 보면 아마도 존중감과 관련된 부분이 결핍되었던 모양이다.
❝자아존중감이라는 것은 외부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느낀다면 그건 가짜 자존감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맥이 풀려버렸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은 외부 환경의 영향 없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형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기의 자아존중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라 할 수 있고, 청소년기 이후에는 또래관계로 그 중요성이 이동해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핵심에 존재하는 자존감의 뿌리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한 이야기겠지만, 아이를 양육하고 인간으로서 충족하고 싶은 기초적인 수면, 취식과 휴식에 대한 욕구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삶의 과정을 통과하다 보면 자존감이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자 이젠 능력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유치원 등원 차량을 놓치지 않도록 아이 밥을 먹이고 옷 입히기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 스킬이 아닌 다른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졌던 것이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부족함 없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성애, 가족을 향한 사랑,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느껴졌고, 욕망 덩어리, 이기심 가득한 불성실 주부로 낙인찍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미루고 덮어두었던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보람을 느끼고, 인정받고 싶어❞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누구나 직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모호하고 가치... 그것으로 부족했다. 좀 더 직접적인 성찰이 필요했다.
작고 힘을 잃은 목소리였지만,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궁극적인 목표가 <인정받는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존중감을 회복시켜줄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일단은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그림출처: pinterest
<틈새 심리학>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위계 피라미드 ¹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는 긴급성과 강도에 따라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를 형성한다고 하였습니다. 7단계로 세분화된 형태의 욕구 단계를 살펴보자면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 자아존중감 욕구까지를 결핍 욕구라 할 수 있습니다. 결핍 욕구는 말 그대로 부족함을 느끼는 욕구에 해당되고 결핍이 채워지면 충족을 느끼고, 추진 동기가 약해진다고 보았습니다.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향하는 인지적 욕구, 심미적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는 성장욕구라 하였고 이는 완전한 충족이 불가능한 욕구라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촉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