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슬픔도 나를 살게 한다
글 / 김석용
삶을 오래 걸어오다 보면, 슬픔이란 손님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누군가의 이별이든,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이든, 혹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마음이든, 슬픔은 조용히 내 곁에 머무르곤 합니다.
어릴 적엔 슬픔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슬프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고, 눈물이 쏟아지면 그 자리에 내가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삶을 다시 들여다보니, 슬픔은 결코 나를 망가뜨리는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살아 있게 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하며, 누군가의 아픔에 조금 더 다가가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슬픔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슬픔을 견디며 흘린 눈물은, 마음에 남은 먼지들을 씻어내고, 굳어 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때로는 조용한 방 한 켠에서 홀로 눈을 감고, 마음속 슬픔과 마주하는 시간이 삶의 어느 위로보다 깊은 쉼이 됩니다.
계절이 바뀌듯, 슬픔도 머물렀다 이내 지나갑니다. 지나간 슬픔은 나를 한 뼘 더 성장하게 했고, 덕분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슬픔이 있었기에 기쁨이 더욱 소중했고, 상실이 있었기에 남아 있는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오후, 창밖으로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슬픔도 결국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고. 내 안에 남은 아픔마저도 언젠가는 따스한 위로가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조용한 손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도 나는, 슬픔과 함께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갑니다.
살아 있음이, 느낄 수 있음이,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이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