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빚어낸 지혜와 사랑의 기록
글 / 김석용
깊은 산 속 어느 한적한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거대한 나무입니다. 그 앞에 서면 왠지 모를 경외감이 밀려옵니다. 마치 오랜 지혜를 간직한 현자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나무는 말없이 서 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 굵은 줄기를 타고 오르는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입니다.
땅속 깊이 뻗은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합니다. 거센 폭풍이 몰아쳐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든든한 뿌리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닮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내면의 단단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나무는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때로는 뿌리가 땅 위로 솟아올라 울퉁불퉁한 모양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투박한 겉모습 속에서도 생명력은 여전히 강렬하게 흐릅니다.
봄이면 연한 새순이 돋아나고, 여름엔 짙푸른 그늘을 드리웁니다. 가을에는 황금빛 축제를 벌이고, 겨울엔 고요한 명상에 잠깁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 순환 속에서 나무는 조금씩 성장합니다. 나이테 하나하나에는 그 해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가뭄이 들었던 해의 좁은 나이테, 풍년이었던 해의 넓은 나이테. 이렇게 나무는 자연의 일기장이 되어 시간을 기록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가지마다 새들이 둥지를 틀고, 껍질 틈새로 곤충들이 오가며, 이끼와 버섯이 함께 자랍니다. 다람쥐는 나무 위를 뛰어다니고, 딱따구리는 부지런히 구멍을 뚫습니다. 이 모든 생명체가 서로 기대어 살아갑니다. 나무는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수많은 생명을 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법을 나무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나무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자랍니다. 급하게 뻗은 가지는 쉽게 부러지지만, 오랜 시간 단단해진 줄기는 어떤 시련도 견뎌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무는 느림의 미학을 가르칩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 소리 없이 베푸는 나눔,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함. 이 모든 덕목을 나무는 평생 동안 보여줍니다. 가만히 나무 곁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맑아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만,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킵니다. 사람들이 왔다가 떠나고, 마을이 생겼다가 사라져도, 나무는 변함없이 그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나무는 계속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맑은 공기를 선물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은 미래에 희망을 심는 일입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작은 묘목을 땅에 심습니다. 그것이 훗날 거대한 나무가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날을 꿈꾸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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