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1~2년에 한 번씩은 꼭 봤던 친구라 흔쾌히 가겠노라 전했다. 일정표에 체크를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친구의 결혼식에는 나 말고도 다른 중학교 때 친구들이 갈 것이다. 삶에 치여 살다 보니 중학교 때 친구들과는 왕래가 잦지 않았다. 졸업 이후 15년이나 지났는데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괜히 은근한 설렘이 느껴졌다.
결혼식 당일, 신부로서 예쁘게 꾸민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중학교 때 친구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심스레 여기저리 둘러봤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이 친구도 중학교 때 친구들과는 많이 연락하지 않았구나. 나는 누군가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내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지, 하고 굉장히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과 코가 익숙했다.
중, 고등학교 때 함께 축구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던 친구였다. 우리는 반가움에 잠시 식장을 나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자기와 같이 온 친구들이 3명 더 있다고 했다. 2명은 같은 중학교 출신이긴 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1명은 이름이 귀에 익었다. 천천히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생각나버렸다. 나와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던 친구였다.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내가 싫어하는 장난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 싸우게 되어 멀어졌었다.
사이 나빴던 그 친구와도 얼떨결에 인사를 했지만 기분이 매우 찝찝했다. 별로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기에 마주 치치 않고 싶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도 왠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애매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가 결혼식 사진을 찍고 나서 하객들과 휩쓸려 가다보니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나와는 15년 만에 만난 터라 자연스레 근황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 건가. 중학교 때 알던 까불까불 하고 장난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진지한 사람 하나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다니던 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퇴학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일에 도전했으나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마음 맞는 일을 찾게 되어 남들보다 늦깎이 입학생으로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다. 늦은 나이지만 인생 전반으로 보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지금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있던 나는 서서히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구나. 나만 변한 줄 알았는데 그 친구도 변했구나. 우리가 유치한 장난으로 틀어졌지만, 어느새 유치한 장난을 치지 않는 나이가 되었구나.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의 야속함에 놀라면서 너무 변해버린 그 친구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10분 남짓이지만, 10분 안에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15년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과 함께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우리는 공부를 싫어하던 중학생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성인이 되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느끼는 힘듦이나 부담을 그 친구도 비슷하게 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왠지 모를 유대감이 느껴졌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우리는 변하고 있었다. 다만 변한 것도 모른 채 주변의 변화에 너무 휩쓸려 간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변했지만 변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