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의지보다는 환경이 중요하다.
한가한 주말, 소파에 퍼질러 웹툰을 보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없었지만,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일부러 만든 것이 있었다. 이렇게 퍼질러 있을 것을 경계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육체의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서 스마트폰 화면만 응시했다. 유난히 시간이 안 가던 이번 한 주를 간신히 견디고 찾아온 주말.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왠지 또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축내기는 아까웠다. 잠시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이내 다시 벌러덩 누워버렸다. 아, 두 다리로 선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한동안 몸을 비틀다가 문득 겨드랑이가 내 코에 닿았다. 겨드랑이에서 풍겨오는 알싸한 쉰내에 내 정신은 번뜩였다. 무척 깔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더럽게 사는 편은 아니었다. 즉시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시니 해야 할 일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함께 샘솟기 시작했다. 이내 샤워를 마치고 바로 노트북을 펼쳐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작업을 마친 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 하기 싫었는데 갑자기 하고픈 의욕이 생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겨드랑이 쉰내는 하나의 트리거였을 뿐, 작업 의욕을 만들어 준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예전에 읽은 작동 흥분 이론(Work Excitement Theory)이 생각났다. 독일의 한 정신의학자가 주창한 개념으로 일단 일을 시작하면 뇌의 측좌핵 부위가 흥분하여, 기계가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현상처럼 일을 계속해서 하게 만든다는 개념이었다.
많은 시간관리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개념의 근거로 사용되는 이론이었다. 일단 샤워를 하려고 움직이니 그다음부터도 무언가 하려는 의욕이 생기는 거구나. 언뜻 당연하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깨달음이었다. 일단 움직이자. 무엇을 생각하든 일단 몸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의 중요성은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정신으로 몸을 지배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몸이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공부를 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하는 것은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공부를 하기 위한 환경인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의지는 쉽게 변할 수 있지만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고정값으로 설정해 놓으면 쭉 간다는 소리이다.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던 모습은 결코 정신이 움직이게끔 만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 움직이지 못할 상황에서 의지로 극복하고자 했으니 당연히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밖에. 그래서 새로이 마음먹었다. 일단 무언가를 하기 위한 마음이 있다면 소파를 멀리 하고 누워 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