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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Aug 20. 2021

엄마의 리즈 시절?

엄마는 서른셋에 5남매의 막내인 나를 낳았고, 같은 나이에 난 첫 아이를 낳았으니,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갱년기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멈칫했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난 그 무렵 엄마의 그 어떤 변화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그대로 엄마였으니까!

핑계를 대어본다. 엄마랑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지, 같이 살았으면 달랐지. 정말 그랬을까? 엄마랑 함께 살았다면, 엄마의 그런 변화들을 예민하게 살뜰히 살폈을까?

삶이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에겐 갱년기를 느낄 겨를도, 그게 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던데. 엄마도 그런 걸 인지할 틈도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엄마는 엄마 인생에서 언제를 리즈 시절로 꼽을까?     


우리 엄마는 정말 ‘천하장사’구나! 느꼈던 때가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역력한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나갈 땐 분명 없었던 커다란 상자가 한쪽 구석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게 뭔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문을 열자마자 콧속 가득 밀고 들어오는 사과 향을 느꼈으니까. 과수원에서 일하고 얻은 사과를 모아 상자째 갖다 놓았다. 그 무렵 우리 집에선 담배를 팔았는데, 담배 상자는 보통 크기의 상자 세 개 정도의 높이였다. 그 큰 상자에 사과가 한가득이었다.

버스도 여러 번 갈아 타야 하거니와 버스 정류장 사이사이의 이동 거리도 만만찮은데, 어떻게 저 큰 상자에 저렇게 많은 사과를 담아서 여기까지 왔을까? 그 여정을 몇 번이고 되짚어 봐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크기와 무게였다. 엄마가 천하장사가 아닌 다음에야……!

그 흔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엌에는 얼룩진 냄비와 그릇들이 윤이 나게 닦여있었다.

부지깽이도 뛸 만큼 바쁜 농사철이라 엄마는 엉덩이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한 채, 이곳저곳에 흔적만 남기고 또 바삐 가버렸다.      




엄마는 가끔 힘들었던 시집살이 얘기를 했다. 일찍 혼자가 된 시어머니와 자기 땅 한 뙈기 없이 남의집살이하는 지독히 가난한 남편과 시집 안 간 시누이…… 요즘으로 따져보면 우리 아버지는 결혼 기피 1순위에 해당하는 남자가 틀림없다. 이런 공식에 맞아떨어지게 할머니는 어린 내 눈에도 엄청 기가 세고 무서웠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그렇게만 되지 않았어도 이런 곳으로 시집오지 않았을 라는 말도 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머니는 그저 막연히 돌아가셨을 거라고 짐작할 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큰 무당이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좀 혼미해져서 집에 불까지 질렀다고 했다. 혼자 못 있어서 서울 큰외삼촌댁에 가서 살았는데, 어느 날 몰래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됐다고 했다.

외삼촌네로 가기 전에 외할머니가 잠시 엄마한테 왔는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매정하게 굴어서 엄마는 몹시 서운했다고 했다. 그렇게 괄시하지 않았다면 외할머니를 그렇게 급하게 큰외삼촌네로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면 외할머니가 그렇게 행방불명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그때는 엄마도 할머니와 아버지 눈치 보느라, 모든 게 가시방석이라 나보고 어쩌라고 이러냐,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외할머니한테 막 소리쳤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서슬 퍼렇던 할머니의 기세도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멀리 돈벌이 떠난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면서 한껏 누그러들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몸소 겪으셨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결같이 잘하는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린 듯했다. 할머니께선 훗날 니 이미 같은 사람도 흔치 않아라는 말과 함께 본인이 며느리 복은 있었다면서 엄마를 치켜세우기도 했으니까.

     

그동안 할머니 기세에 눌려 꼼짝 못 하던, 효자였던 아버지도 조금씩 엄마를 챙기기 시작했던 무렵이 엄마가 객지에서 돌아오고,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즈음이었다. 그쯤부터 엄마의 리즈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여기는 근거에는 우리 집 앨범에서 엄마가 고운 한복을 입고 웃고 있는 사진들이 이 시절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마을 부녀회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떠나는 여행에서, 국민학교 봄가을 운동회 사진에서,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진분홍빛 화사한 한복 빛깔만큼 곱고 어여쁜 얼굴로…… 엄마는 이때가 나의 리즈시절이야!’ 말하는 듯했다.

사진을 볼 때면 팍팍하게만 보이던 우리 엄마의 삶에도 이런 시절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위안했다. 물론 엄마한테 아직 물어보진 못했다.

엄마, 엄마는 언제가 엄마 인생에서 젤로 좋았어?”

엄마의 대답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TV 광고에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는 약품이 나오면 우리 딸은 우리 엄마한테 저게 꼭 필요한데…… 하며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갱년기 엄마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 광고에 삽입된 화가 많아진이란 말에 동의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내 인생에선 언제가 리즈 시절이었을까?

                                           아직 오지 않은 거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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