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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Dec 19. 2015

엄마의 가방

엄마는 왜 백팩을 좋아하게 된 걸까

서울에 올라왔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온다고 말하면 분명 못 오게 할게 뻔해서 아무 말없이 오셨을 것이다. 엄마를 배웅하러 나간 길, 저 멀리 선글라스를 끼고, 축 늘어진 배낭을 멘 채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게 올 때면 엄마의 가방은 정해져 있다. 아니 내가 혼자 살게 된 순간부터 엄마의 가방이란 '백팩(back  pack)'으로 정의된 것이다. 마치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등에 딱 달라붙은 백팩은 이제 엄마의 일부로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단단하고 견고해서 벗겨 보려 해도 깨어보려 해도 금하나 가지 않을 만큼. 애초에 없으면 균형을 깨트리는 완벽한 비장미마저 풍겼다.




이윽고 횡단보도 앞에 마주 서니 선글라스까지 낀 엄마는 칼만 없는 닌자거북이 같았다. 닌자거북이가 악당과 맞서 사람들을 지키려 세상에 왔다면, 나를 향해 켜진 빨간 불을 초록 불로 바꿔주러 엄마가 온 것이다.


퇴근길 수많은 인파의 반대편에 홀로 서 있는 나를 지키러 엄마가 온 것이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과 과일, 치약과 수건 같은 생필품까지 냉장고와 욕실을 털어 한가득 꾸려진 가방 속의 짐들을 빼고도 줄지 않는 짐들이 양손의 종이가방에도 있었다. 


여분의 비닐팩, 수첩과 필기구, 영수증과 동전 묶음, 사탕과 초코바, 그리고 오렌지 주스

언제부터인가 이것들은 엄마와 함께인 게 아주 당연했다. 어딜 가도 작은 것 하나는 꼭 얻어 와야 했고, 필요한 요리법이 나오면 즉시 적어야 했으며, 가까운 곳에 갈 때에도 혈당이 떨어질까 단것들을 잔뜩 챙기지 않으면 안됐으니까. 


나는 엄마의 20대를 모른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기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가벼운 빈 손의 젊은 여성을 사진 속에서만 봤을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첫 가방은 토트백(tote bag)이다.

손잡이가 2개 있는 소형 가방을 뜻하는 토트백은 휴대가 편리해서 잠깐의 외출 시에 고민 없이 쉽게 손이 가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성인 여자 양 손바닥을 합친 정도의 크기에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던 그 가방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유치원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던 때에도 그 토트백 하나로 엄마와 7살 딸은 아무런 문제없이 충분히 즐거운 하루를 보냈었다. 


생각해 보면 30대 엄마의 짐은 한 손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무게이지 않았을까.  

아직은 커지지 않은 자식의 몸은 업어 줄 수 있을 만한 체력이 있었고, 세상에 대한 삐뚤어진 시선이 생길 만큼 자라지 않은 머리는 경제적 뒷바라지와 마음의 부담을 덜어 주었을 테니 말이다. 또한 아름다운 것을 원했던 처녀시절의 채취가 '무색무취'의 부모라는 책임감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벼운 무게만큼 상대적으로 잃어버리기 쉬운 토트백은 오래지 않아 택시에서 마지막 운명을 다했다. 택시에 탔다가 깜빡 잊고 좌석에 두고 내린 단 한 번의 실수로 엄마는 다시는 손에 드는 것을 갖지 않았다.



그 분실사건을 계기로 엄마는 네모난 형태의 가죽으로 된 검은색 크로스백(cross bag)을 구입했다.  

조절할 수 있는 어깨끈이 달려 있는 크로스백은 '벗어야겠다'고 의식하지 않는 이상 한 번 착용하면 절대로 몸에서 분리되지 않는 안심스런 가방이었다. 끈으로 연결돼 엄마의 몸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던 가방의 몸통은 옆에 있어도 보고 싶고, 죽는 순간까지도 걱정거리로 남아있는 자식의 모습과 닮아 있다.  


40대 엄마는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가방을 메야하는지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잘 풀리지 않는 그녀의 파마처럼 '오랫동안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가방 선택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천이나 비닐, 가죽으로 둔갑한 합성피혁은 안 될 것이었다. 시금치 한 단의 몇 백 원 가격차이에도 벌벌 떠는 그녀가 이 크로스백만큼은 꽤 비싼 가죽을 고집했다. 아무리 무거운 물건을 많이 넣어도 질긴 가죽의 힘으로 튼튼히 받쳐내고, 눈-비가 오는 굳은 날씨에도 쉽사리 젓지 않으며, 물이 쏟아지는 돌발의 변수에도 또르르 물방울로 흘려내 버리는 무적의 재질. 


그 가죽은 곧 엄마였다. 맞벌이 부부로 빠듯한 형편에도, 온갖 학원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엄마는 힘들어도 아파도 더 단단한 가죽이 되어 갔을 것이다. 행여 닳기라도 할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들려고 집에 돌아오면 수시로 콜드크림을 발라가며 광을 냈던 크로스백은 엄마의 40대와 나의 10대를 함께했다. 



한쪽 어깨에만 지는 게 모자랐던지, 이제는 양 쪽 어깨 모두를 내줘야 할 만큼 엄마의 짐은 크고 무겁고 다양하다. 수업이 끝나면 늘 사 먹던 떡볶이에서부터 떼써서 들었던 걸스카웃, 이력서에 적을 한 줄을 위해 공부했던 전공책과 토익, 항상 피곤한 출퇴근 지옥철. 


내가 크면서 보고 느끼는 이 모든 것들과 나의 시간까지 그 가방에 넣어야 했기에...


엄마는 왜 백팩만 메는 거야?   

/  그게 편해서 좋아.

무거운 짐이 당연하고, 자신이 지는 게 당연해서 이제는 그 익숙함이 좋다는 엄마의 백팩.

훗날 내 가방도 점점 더 무거워질 것임을 안다. 클러치를 좋아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날이 오면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아이의 짐을 거뜬히 옮기겠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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