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걸 얻는다는 건
헤어지기 아쉬워 찾은 공원,
벤치에 앉아 별구경을 하다가 문득
남자는 여자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궁금해집니다.
남녀 사이 과거 얘기는
득 보다 실이 많다는 걸 잘 알면서
그래도 묻고 싶습니다.
"첫사랑... 어땠어?"
골똘히 생각하던 여자는 엉뚱한 말로 입을 열죠.
"나한테 첫사랑은 SES 1집 같은 거다?
처음으로 내 돈 주고 구입한 앨범.
언제였더라, 아마도 한자릿수 나이였을 거야.
쥬쥬 인형도 세일러문 요술봉도 엄마의 허락 아래 엄마의 지갑에서
나에게로 도착할 수 있었던 때.
여덟 살이 원하는 걸 얻는 방식. 그렇게 밖에는 없잖아.
근데 참 이상하지.
SES 앨범은 왜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을까 모르겠어.
한철 가지고 노는 인형보다 덜 소모적인 데도
망가지고 닳아서 버려질 염려도 없는데도
어쩌면 떼쓰지 않아도 쉽게 사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나는 사달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남자는 더 들어 보기로
"그럼 어떻게 샀어?"
"그래서 시간은 좀 걸렸지.
꼬깃꼬깃 쌈짓돈을 모아 레코드 가게에 가서
'SES 한 장 주세요'했더니
아저씨는 '어떤 걸로 줄까'그러시는 거야.
테이프를 살까, CD를 살까 고민하다가
결국 비싸도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CD를 들고 왔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대단한 결심이지 않았을까 싶어.
좋아하는 게 있으면 더 빨리 갖고 싶잖아.
어린아이면 더 그랬을 텐데.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누구에게 말이라도 하면 달아날까 비밀스럽게
더디고 서툴러도 온전히 내 힘으로
원하는 걸 지켜내겠단 마음,
그걸 꼬맹이가 해낸 거잖아."
나지막이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여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갑니다.
"하나를 원하면 하나를 내놓는다.
정말 좋아하는 걸 진짜로 품어본다는 건 그런 거잖아.
한 사람을 원하려면 둘 셋 넷... 내놓아야 하는 게 수도 없잖아.
우리 아끼지 말자.
아껴서 서로를 잃진 말자.
어렵게 돌아온 만큼 나 너를 진득하게 품어볼 거야."
소싯적 SES 1집을 손에 넣었을 그때부터
여자는 알게 됐을까요. 대가가 필요한 교환 법칙의 세계를.
첫사랑을 지나치며
여자는 알게 된 걸까요. 불공평한 교환이 당연한 사랑이란 세계를.
지금 당신을 만난 건 더 주고 싶어서
두 사람은 알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