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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Apr 16. 2016

너는 흘리고 나는 줍고

우린 찰떡의 운명 

문을 열자마자 기다린 듯 

울리는 메시지.

'수영아, 허전하지 않아?'


피곤하겠다며 빨리 들어가라고 할 땐 언제고,

오분도 안돼서 도착한 남자의 아쉬움.

수영이란 여자는 그가 듣고 싶어 할 말을 적습니다.


'나도 보고 싶어.'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ㅋㅋㅋㅋ'


많이가 걸리긴 하지만 보고 싶은 건 사실이니까 인정,

뒤이은 네 번의 웃음은 그냥 넘길 수가 없는 여자.


'왜 웃어?'

'네가 날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게 팍팍 느껴져서.

잘 좀 봐봐. 진짜 안 허전해?'

 

왜 저러나 싶어서 들고 있던 짐을 살피는 여자.

가방 있고, 그 속에 지갑도 화장품도 잘 있고.

남자가 사준 치즈케이크도 너무 잘 있고.


'나 아직 안 가고 있으니까, 얼른 내려와.'


얼마 뒤 다시 온 메시지를 확인한 여자는

'이 남자 오늘 왜 이러나' 수상쩍어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갑니다.


자신을 내려준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남자의 차.

금방 다시 만난 여자는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왜 그래 오늘? 이상하게."



남자는 실실 웃음을 흘리면서

여자의 어깨 위로 옷을 덮어 줍니다.


"가디건. 칠칠아. 너 가디건 두고 갔잖아.

솔직히 말해봐. 나 또 보고 싶어서 두고 간 거지?

맨날 흘리고 다니는데, 내가 떨어질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래서 내가 널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민망해서 발그레 달아오른 여자의 볼.

좋으면서 괜스레 높아진 목소리로 화를 냅니다. 

"내가 언제!? 내가 언제 또 흘리고 다녔다 그래!"


여자가 잊고 있는 그녀의 '흘렸던 과거'를 

남자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대학 후배였던 여자를 처음 본 날은

생일을 맞은 친구가 한턱내는 자리.


조용조용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여자는

점점 취기가 오를수록 조신과는 거리가 멀어져서

"저 선배가 얼마나 저를 뺏겨 먹었는지 몰라요.

생긴 것처럼 모기였다니까요. 쪽쪽쪽.

진짜 잘해야 되요. 왕모기 선배는 저한테."


빨간 얼굴로 모기 흉내까지 내며 

친구 흉을 보는 여자가 남자 눈엔 귀여워 보였는데

어느새 그녀는 사라져 버렸어요.



혀가 풀린 여자는 이내 집으로 보내졌고,

앉았던 자리엔 연 노란 목도리만 남겨졌으니

남자는 '이런 게 기회다' 싶었죠.


홀랑 목도리를 챙겨버린 남자는

친구에게 여자의 번호를 알아내곤

'놓고 간 것을 돌려주겠다'며 여자와 만날 수 있었죠.


칠칠이와 줍줍이는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본 걸까요.


사랑하고 싶다면 흘려 보세요.

그대가 흘린 매력을 누군가 주워갈 테니까.


흘려도 보고 주워도 보면서

내 사람을 찾아가는 길.

선녀와 나무꾼은 우리들 곁에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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