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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Dec 22. 2015

사라진 벨소리들

노래와 함께 이별했던 나의 지난 연애.

스물한 살,  처음으로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났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집으로 다니러 갔던  삼일. 그 짧은 3일 동안에 생각지도 못한 내 첫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나와 이 곳에서 일을 하는 그 사람.


그래서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목소리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아침, 점심, 저녁, 새벽.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난 참 열심히 받았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하는 말은 사실이었다. 대충 흘겨 지나갔던 페이지의 대사가 내게도 뚜벅뚜벅 다가왔음을 느꼈다. 


스윗소로우의  < 그대가 있어서 > 전주가 시작하기만 해도 심장박동수가 빨라졌다. 그 당시 나의 벨소리가 전화가 왔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나중에는 그 두근거림이 좋아서 괜스레 늦게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이 세상 모든 노래 들은 사랑타령만 한다고 불만을 갖던 나였는데, 이제 그 가사들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있어요 그대 곁엔 내가 웃고 있죠

너무나 다른데 참 어울리는 우리 두 사람

하루 또 하루 닮아가고 있죠 

참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

한 마디 말로도 그댄 내게 힘이 되는 사람 하루에 지쳐도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사람

그대 때문에 난 알아가고 있죠 사랑이란 그 벅찬 행복을


그 어떤 말보다 찬란한 나의 그대여

그대가 있어서 내 마음에 와줘서 고마워요 정말


내 삶의 멜로디 그댄 내 삶의 비타민

그 어떤 말보다 소중한 나의 그대여

...


하루하루가 쌓여가고 '그대'에게 말하는 가사 속 화자가 꼭 나 같았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취미도 너무 달라서 친구가 되기도 힘든 사람 둘이 신기하게도 연인이 되었다. 처음엔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먼저 와준 고마움이 컸다. 매일 하는 통화가 끝날 때쯤이면 다음 전화를 기다리게 되는 게 사랑이란 것도 그 덕분에 알게 됐다.  


사랑해서 행복하다 얘기만 하는 노래와 달리 내 노래 속 그는 이별을 말했다.


슬펐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냈다. 나는 내일 당장의 생활이 중요했으니까.

수업을 들어가지 않을 만큼, 공부를 하지 않아 쪽지시험을 망칠 만큼, 내 생활을 흔들어 놓을 만큼 그를 좋아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 생활이 흔들리면 많이 좋아했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 같아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했었다.


같이 방을 쓰던 기숙사 룸메이트가 물었다. "한동안은 전화받느라 바쁘더니 요 며칠은 조용하네? 헤어졌니?" 

/ "만난 적 없어.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앞으로 조용할 거야." 


그 누구에게도 그를 말한 적이 없기에, 헤어질 것도 없다고 말한 건 내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고, 나를 정당화시키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사이 걸려왔던 전화들 때문에. 


벨소리가 울리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보이지 않는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덴 것처럼 따가웠다. 그래서 얼마간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다. '혹시 그가 걸진 않았을까'라며 기대를 하고,  '엄마'라고 적힌 글씨가 화면에 뜨는 순간, 내가 원하던 이름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내 모습이 싫었으니까. 꾹꾹 눌러왔던 그 사람이 용수철처럼 내 앞으로 튕겨져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보여주는 거 같아서. 나는 이제 그 노래를 듣는 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벨소리를 지웠다. 그 사람이 그리울 때면 그 노래가 다시 듣고 싶기도 했지만, 꾹 참았다.     



첫 연애가 그렇게 끝나고, 그 뒤로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수만큼 벨소리는 지워져 갔다. 벨소리를 지운다는 건 내게 이별의식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얼굴, 목소리, 같이 걸었던 길과 함께 먹었던 음식.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들을 벨소리에 봉인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란 동화가 겹쳐졌다.



득실거리는 쥐 때문에 골치를 썩는 마을에 신비한 힘을 가진 피리 부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소문을 들은 마을의 시장은 쥐를 쫓아주면 상금을 주겠노라 약속을 했고, 사나이는 피리를 불어 모든 쥐들을 강으로 빠트리는 재주를 부렸다. 하지만 쥐떼가 사라지자 시장은 약속된 상금을 주지 않았고, 화가 난 사나이는 피리를 불어 마을의 아이들을 모두 산으로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벨소리는 나한테 마법의 피리소리지 않을까.


처음 그가 들러준 소리는 쥐를 소탕해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지만, 두 번째로 들려준 소리는 아이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슬픔을 가져왔다. 지워진 벨소리도 처음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기 전부터 나를 들뜨게 하는 기분 좋은 소리였다. 하지만 이별 뒤 벨소리는 내 마음속 그리움들을 자꾸 불러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아직도 벨소리를 지우는 건 나에게 힘들다. 하지만 '사라진 벨소리 리스트'를 마냥 싫어하진 않게 됐다.

듣기 힘든 노래였다는 건 그 만큼 내가 듣고 싶은 노래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진 '내 연애의 역사' 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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