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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Dec 23. 2015

도서관에 갈 땐 낡은 책을 빌려

낡은 것의 행복함에 눈을 뜨다

도서관만큼 자애로운 곳이 있을까.

대형서점은 주로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거나 백화점 또는 마트에 입점해 있기에 우리의 드나듦을 쉽게 허락한다. 굳이 책이라는 물건에 볼일이 없어도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장소로 카페  못지않은 지명을 받는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 반경에 속해있는 대형서점과 달리 도서관은 찾기 어려운 곳에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쉽지 않은 접근성에 나그네의 쉼터가 되기엔 어렵지만 도서관을 찾는 이들은 '책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자들이다. 도서관은 편리하지 않은 곳에서 순수한 방문 목적의 사람들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의 조용한 입장 제한 외침이 들린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찾아주세요"


그렇담 누구나에게 자애롭진 않지 않은가. 하지만 오롯이 책만을 위해 걸음 한 사람들에겐 그들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효용치의 기쁨을 선사한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이 아닌 책들은 상업공간인 서점에서 그 입지가 자유롭지 못하다. 팔리냐 팔리지 않느냐의 명제로 시시각각 선반 위치가 달라지고, 나아가 그 서점에서의 존폐 여부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판되는 책들을 위해선 잘 팔리지 않는 책들이 어떠한 버림받는 절차를 밟는 건 당연하다. 출판시장 또한 경제논리로 움직여야 함이 맞지만 어쩐지 책이란 인쇄매체는 다른 물건들이 처해있는 현실보다 더 가혹하고 더 불합리한 곳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도서관에선 그렇지가 않다. 도서관은 인기 없고 오래된 책들까지도 자애롭게 품어주는 넉넉함을 가졌다.


각 잡힌 새책들이 풍기는 '새 것'의 냄새가 가득한 서점보다 사랑이 넘치는 도서관이 좋다. 

어떤 책을 빌리게 된 후부터 더더욱.


몇 해 전, 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장르적 성격이 강한 소설은 싫어했지만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만큼 흡입력이 있다는 온라인 평들에 왠지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주말에 도서관으로 달렸갔다.



                                                           879- S 245 - ㄴ  /  눈먼 자들의 도시


 도서 분류 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책을 찾아 나섰다.


아래쪽에서부터 훍터 올라와도, 책장 한 칸을 한 바퀴 돌아도 내 눈엔  '눈'이라는 한 글자 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한참을 뒤지다 드디어 발견한 책. 어두운 표지색에 어두운 글자색,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당연해 보였고, 다른 책들에 비해 현저히 시각적 매력이 떨어져 걱정이 될 정도였다.


헌데 똑같은 책이 두 권이나 꽂혀 있었다. 빛바램으로 노래진 종이 색깔과 딱딱한 표지 부분과 책이 분리되기 시작해 헐거워진 이음새를 가진 한 권. 나머지 한 권은 마찬가지로 종이 색이 바랬으나 빳빳한 책장의 느낌이 비교적 손을 덜 탄 듯 보였다. 그래서 난 망설임의  여지없이 덜 낡아 보이는 것을 빌렸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새로운 책의 온전한 설렘을 느끼고 싶어 가방 속에 넣고 꺼내보고 싶은 유혹을 참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책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제목이 <눈 뜬 자들의 도시> 가 아닌가...


아니 어떻게 한 글자만 다른 제목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재빨리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해 본 결과, 이 책의 현존 여부는 확실했다.


이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 씨가 1995년,  <눈먼 자들의 도시>를 집필하고 9년 뒤 속편 격으로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내놓은 것이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곰곰이 한 시간 전 장면들을 돌이켜 보니 두 권 중에서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이 더 빨리 출간된 <  눈먼 자들의 도시> 였단 걸 알게 됐다. 만약 내가 더 깨끗한 것을 고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원래의 목적대로 원하는 책을 빌려 왔을 것이다.


마치 도서관에 두고 온 낡은 책이 나를 비웃는 거 같았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예쁜 책만 좋아하더니, 잘 됐다! ' 


사실이었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에 있어 디자인은 큰 한몫을 차지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글씨체를 가진 책들은 내용 또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거침없이 예쁜 책을 골랐다.  책뿐만이 아니었다. 옷도, 신발도 예쁜 걸 골랐고,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갔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 나에게 '좋은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닌 것도 있었다. 특히 도서관에서 만큼은 전혀 아니란 걸 깨닫는다. 낡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손을 탔다는 것이며,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사랑한 책임을 뜻한다. 그렇기에 실망할 가능성이 큰 깨끗한 책들과 달리 어느 정도 검증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내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아니 '뜨기만 한 내 먼 눈'을 알아차리게 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너무 잘 알지만, 외모지상주의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드는 나지만 , 내 물건을 고를 땐 달라지게 된다. 세상엔 너무 예쁜 것들이 날마다 쏟아지고, 나에겐 그걸 살만한 돈은 없을 때 나는 도서관에 간다.  그곳에서 더 낣은 책을 골라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는 공짜 기쁨을 득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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