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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100-48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난감한#배추

by 향기로운 민정

친구가 시골집에서 가져온 무, 배추, 과일 등 한 보따리 가져다줬다. 종종 가져다주는 친구의 정성을 생각해서 받은 것들은 썩혀 버리지 않도록 억척스럽게 노력한다. 시장에서 본 쌈 배추의 크기를 생각했는데 머리통보다 더 큰 배추 보고 깜짝 놀랐다. 받아놓고 어떻게 해먹을지 고민이 된다. 너무 커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큰 잎은 떼어내서 따로 놓고 작은 속잎은 김장 김치 하고 남은 양념 소룬 싸 먹으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배추 큰 잎으로 배춧국을 끓일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생각나는 배추전이다. 줄기가 통통해서 아침부터 소금물에 절여 보기로 했다. 반나절이 지났건만, 배추 줄기는 살아서 밭으로 뛰어갈 만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부쳐 보기로 한다. 잎을 씻어서 배추 이파리에 마른 가루를 꼼꼼히 묻힌다. 남은 밀가루를 털어서 통에 넣고 다시 밀가루와 부침가루를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 소금으로 간도 하고 풋고추를 다져서 매콤함을 첨가하고 강황가루로 색깔도 살짝 내준다. 나름 웰빙이다. 계란을 넣으려고 두 개를 꺼내왔는데 2개 다 넣으면 쉽게 탈것 같아서 하나만 넣는다. 마른 가루를 묻힌 배춧잎을 걸쭉한 반죽에 묻혀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 굽는다. 배추 줄기가 두꺼워 반죽이 벗겨져 너덜너덜해진다. 배추 줄기만 잘라서 따로 부쳐 보기로 한다. 몇 번을 부쳐도 생각처럼 예쁜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너덜너덜한 것은 내 입이 해결한다. 식용유도 넉넉히 보충하고 불 세기도 조절하면서 예쁜 모양을 만들어 보려 애써보아도 너덜너덜하다. 반죽이 너무 걸쭉한 듯하여 물을 조금만 보충하려 했는데 너무 많이 들어갔다. 괜찮겠지 하고 구웠는데 흐물흐물하다. 입이 바로 해결한다. 다시 마른 가루를 넣어서 농도를 맞춘다. 배추가 찢어지고 타고 난리다. 겨우겨우 10개 정도 부치니까 모양도, 색깔도 예쁜 배추전이 나온다. 드디어 제대로 된 배추전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준비한 재료가 모두 소진됐. 2시간이 홀딱 가 버렀다. 체력은 고갈 났는데 부엌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부엌은 부침을 부치면서 무엇을 만졌는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사용했는지를 고스란히 눈으로 확인 시켜주고 있다. 너무도 자상하게 알려주는 현장을 외면할 수가 없다. 옷이며, 그릇이며 안 묻은 곳이 없다 도구는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잔치 음식을 한 것 같은 설거지들. 계란을 두 개 꺼내왔는데 한 개는 사용하고 한 개는 씻었기 때문에 다시 냉장고에 넣을 수가 없다. 고심 끝에 계란 프라이를 하려고 식용유를 부었는데‥ 너무 많이 부었다. 프라이는 안될 것 같아서 계란말이로 변경해야 한다. 김가루를 넣어서 계란말이를 완성한다. 배추 줄기는 그냥 먹는 것보다 두부조림처럼 양념해서 조림을 해보기로 한다. 두부조림 같은 맛을 상상한다. 어쩌다 보니 반찬 3개가 탄생했다.

그런데‥ 배가 부르다.

부침 부치면서 안 이쁘다고 먹고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집어먹은 결과다. 음식은 조리해서 바로 먹어야 제맛이거늘 ‥. 이미 포만감으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거실에 앉아서 한숨 돌리려는데 부엌 쪽이 뿌옇다. 환풍기가 열심히 돌았는데도 연기를 감당 못했나 보다. 이 추운 겨울날 환기가 필요하다.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창문을 열어야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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