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떡 100-58
#책과 강연#백백글쓰기#14기#누워서#떡
방앗간에서 갓 뽑은 하얀 인절미를 빨간 고무 대야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인절미를 방에 두고 어른들은 없었다. 머리맡에서 김이 사르르 피어오르는 갓 뽑아온 떡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다가 떡 냄새를 맡은 언니가 벌떡 일어난다. 떡 함지박에 다가갔다. 한 움큼 떼어서 잠에 취해있는 나에게 주고 한 움큼 떼어서 바로 누워서 언니도 떡을 먹는다. 그렇게 바로 잠이 든 것 같다.
잠결에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떡 먹은 언니가 얹혀서 손가락을 따고 있다. 두메산골에 소화제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얹혔을 때는 손가락을 따는 것이 최고였다. 실과 바늘을 준비한다. 등부터 두들겨서 팔을 주무르고 손가락 방향으로 쓸어내린다. 엄지손가락 중간에 실로 칭칭 감는다. 심장으로 가는 피를 막고 엄지손가락을 구부린다. 손톱이 시작되는 부분에 바늘로 콕 찌르면 피가 한 방울 툭 나온다. 선홍빛 피가 나오면 얹히지 않았다. 까만 피가 나오면 얹혔다는 증거다. 색깔이 검정에 가까울수록 얹힌 강도가 크다. 보통은 양쪽 엄지만 따도 내려간다. 조금 심하다 싶으면 양쪽 엄지, 중지와 새끼손가락을 따면 해결된다. 열 손가락은 심각할 때 딴다. 언니는 열 손가락을 다 따고 괜찮아졌다고 한다. 언니 손가락을 따는 난리 통에 잠에서 깼다. 같이 누워서 떡을 먹은 나도 예외는 아니다. 속이 갑갑하고 불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손을 딸 자신은 없다. 겁이 많은 나는 그냥 참겠다고 했다가 할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울며 겨자 먹듯이 억지로 따야만 했다. 큰 용기를 내서 언니처럼 열 손가락을 다 땄건만, 여전히 속은 답답하다. 창백하게 변한 손녀 얼굴을 본 할머니는 마음이 급하셨다. 된장을 푼 물을 한 사발 가져오셨다. 빨리 먹으라고 하는데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 어린 시선에 보이는 된장물은 '이상함' 그 자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다. 비유가 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입을 틀어막고 도망갔다. 뒤통수에 대고 화를 내시고 야단하시는 바람에 그냥 멈출 수밖에 없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한 모금 입에 넣었지만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입에 물고 못 넘긴 모습을 보고 빨리 넘기라고 하신다. 다시 된장물을 입에 가져다 댄다. 한 번 삼키고 보니 조금은 수월 해진 듯하다. 기어이 한 사발을 마시게 하시고 나를 놓아주신다. 된장물의 효험을 아는 것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신기하게도 속이 후련해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떡을 먹지 않았다. 그 후 된장은 소울 푸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