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골목길은 100-60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눈#썰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동네라서 짬짬이 마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하얀 꽃송이 같은 눈송이가 나리면 밖에 나가고 싶다. 롱패딩으로 발목까지 덮고 부츠까지 신으면 찬 바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겠지. 패딩에 붙은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하고 목도리로 칭칭 감는다. 눈 주위만 가까스로 바람을 허락하고 집을 나선다. 옛 시골집을 허물고 다세대 주택으로 다시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예스러운 한옥의 모습은 몇 채 안 된다. 골목길은 여전히 시골 마을 길이다. 담장이 없어도 골목길은 경사진 길이 여러 곳이 있다. 구불구불 정겨운 흔적이 남아있다. 눈이 조금씩 쌓이는 길을 보니 왠비료 포대를 가져와 썰매를 타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우리 집 바로 위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마을 동산을 깎아서 산꼭대기에 지은 학교였다. 학교 가는 길은 등산을 하는 것과 같았다. 책가방을 메고 헉헉대며 등산을 하듯이 학교를 가야 했다. 그 높은 학교를 3년씩이니 오르락내리락했으니 지금 내 종아리에 묵직한 근육을 만들어준 1등 공신이다. 그만큼 높고 길었던 학교 가는 길이다. 학교가 높은 곳에 있다고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이 자주, 그리고 많이 왔던 지역이었다. 올라갈 땐 힘들게 올라갔어도 눈이 오면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을 입고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재미가 있다. 그 길은 눈이 오면 동네 아이들 눈썰매장이 된다. 농사짓는 집이 별로 없어서 비료포대를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이니다. 비료포대 안에 볏짚을 넣으면 폭신해서 엉덩이에 전해지는 충격이 덜했다. 적당하게 경사진 길은 썰매 타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지만 한기지 난관이 있었다.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 끝에는 버스가 다니는 길과 만난다. 집 앞이 버스 종점이라서 버스가 자주 지나다녔다. 그래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가, 서로를 위해서 꼭, 기필코 해야 하는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