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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Jan 12. 2024

눈 내리는  골목길은 (2)  100-61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눈#썰매

누구든 썰매를 타고 내려가면 버스가 출발하는지 살피고 " 출발!"  혹은 "멈춰!" 하고 목청껏 외쳐야 한다. 위에서 출발 신호를 듣고 출발하는 것은 철칙이다.  썰매는 한 번 출발하면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버스와 같이 출발하면 위험하다. 어른들은 그곳에서 썰매를 탄다고 야단하셨다. 아래에 있는 아이들은 무조건 종점에  정차한 버스가  출발하는지를 꼭 살펴보고 신호를 보내야 하는 건 무언의 약속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꼭 이행해야 하는 중요한 몫이었다. 썰매는 혼자 타고 내려가도 신났지만 겁 많은 초보자 혹은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2명이 타고 내려가기도 한다. 또,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 한 번씩 기차놀이를 한다.  각자의 썰매를 타고 3명 이상씩 앞뒤로 꽉 잡고 내려간다.  꼬리가 길면 길수록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속도감을 감당하지 못해 누군가가 살짝만 움직여도 끊기고 이탈된다. 너무 신난 아이들이 무언의 약속을 깜박할 만큼 재미에 취해 있을 때, 에 있던 아이들도 깜박하고 출발했다. 하필이면 기차로 한 무더기가 출발했는데 버스도 출발했음을 뒤늦게 확인한다.  출발한 버스와 위에서 기차로 출발한 썰매를 한 발 늦게  발견한 아이들이  다급하게 멈추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한 번 출발한 썰매는 속도가 붙어서 중간에 멈추지도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거의 다 내려와서 출발한 버스를 발견하고 멈추려고 발버둥 쳐도 역부족이다.  종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마을 길이다 보니 서행했다.  버스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멈추고 버스기사도 썰매를 보고 멈추었다. 기절초풍 직전까지 가셨던 버스 기사님도 놀란 가슴 쓸어내릴 틈도 없이 "야! 이노므 새끼 들앗!" 고함을 지르며 내리셨다. 10년 감수할 뻔했던 아이들도 비료포대도 못 챙기고 몸만 튀기 바빴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아이들  뒤통수 대고 호통하신 버스 기사님. 버스 앞에 흩어진 비료포대를 모두 수거해서 버스에 오르셨다. 미련 없이 출발하는 버스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먼발치에서  두고 온 비료 포대를 주워 오려고 노리고 있었다.  모두 주워가시는 버스기사님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표정이 다 말해주고 있다. 위험을 확인 안 하고 내려온 잘못은 까맣게 잊고 얄미움만 남아서 발만 동동 구른다. 그 후로 눈이 녹을 때까지 썰매를 탈 수가 없었다.  윤이 반질반질 나서 얼굴이 칠 것 같았던  우리들의 놀이터가 햇볕에 사르르 녹는다. 흐르는 물이 우리들의 아쉬운 눈물 같았다.


  서로가 너무 놀라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혼비백산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사고가 안 났기에 지금  웃음으로 회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고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놀았던 아이들을 못 말렸던 동네 어른들을 대신해  한 번에 정리해 주신 버스기사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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