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기로운 민정 Jan 24. 2024

겨울 속에   100-73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겨울#백련

세상에  새하얀 고요함이 내려앉은 겨울날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시흥에 있는 관곡지를 찾아갔다.  강렬한 색채로 그림을 그리는 지인과 함께 하는 나들이다. 왠지 감성 충만할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대감이 상승한다.


한여름에는 둥글고 널따란 초록색 이파리 사이사이로 꽃을 피웠다. 백련이 고고한 자태로 우아함을 뽐내며  많은 사람들을 맞이했던 지난여름.  매혹적인 빛깔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백련만발했던 곳이다.  꽃이 진 겨울이라는 계절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던 참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텅 비어 있는 연못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람들의 숱한 발자국을 간직한 겨울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관곡지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넓은 평면에 고즈넉함만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다. 끝이 없이 펼쳐놓은 도화지 같은 허허벌판이다. 모든 것이 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하다. 우리의 발자국 소리가 잠을 깨울까 살금살금 걷게 된다. 목소리에 놀랄까 말소리도 낮추게 한다. 숨죽인 채 바라본 우리 시야에, 경계를 알 수 없는 연못이 펼쳐있다.  겨울이라는 계절 속에 풍덩 빠지게 한다.


갈색 대공 끝에 연밥이 고개를 숙인 채 얼음에 갇혀 있다. 나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쓸쓸함이 묻어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푸르름을 젖히고 꼿꼿하게 허리 세워 피워낸 꽃송이를 떨궈낸 모습. 홀로 남겨져 겨울을 맞이 모습. 왠지, 낯설지 않다.  시골집 툇마루에 홀로 앉아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 모습 같다.  


얼음 속으로 고개를 처박힌 채 겨울바람을 견디고 있는 모습에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묻어있다. 바람에 힘없이 꺾인 것이 아니라, 잠시 피하려고 고개를 숙인 것은 아닐까! 굽어진 갈색 줄기 기다림과 희망을 안겨 주는 듯하다.

한참을 서성이다 보니  얼음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반갑다. 한 발자국 더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꽁꽁 얼어 있는 얼음 속에서도 물은 흐르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불어오는 바람에 얼음이 '빠지직' 비명을 지른다.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를 집으로  보내려는 몸짓 같다.

작가의 이전글 우체통이 100-7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