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기로운 민정 Jan 25. 2024

잘 자란다 100-74

#책과강연#백백글쓰기# 14기#무#싹

친구가 시골에서 무를 가져왔다고 무 2개를  준다. 늘 내 몫까지 챙기는 친구 덕분에 아삭하고 시원 달콤한 가을 무 맛을 볼 수 있다. 이 겨울에도 싱싱하게 저장되어 있는 무가 탐스럽다. 무청이 자라던 윗부분을 먼저 싹둑 잘랐다. 음식을 포장해 왔던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무 밑동만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거실 한편에 잘 놓아두었다.  어릴 적에 싹이 난 양파를,  감자를, 고구마를, 물에 담가서 새싹을 키워본 기억을 더듬어 본다. 무청도 잘 자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농부의 딸인가 보다. 농작물 싹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 그러고 보니 미처 먹지 못한 감자랑 고구마가 싹이 난 것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차올라 쉽게 버리지 못한다. 무청도 키워보고 싶다.


아기 피부 같은 여린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오며 가며   새싹이  잘 자라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물이 없으면 물을 보충해 준다.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시골에서 올라왔을 땐 싹둑 잘려나간 무청의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노랗게 삐쭉삐쭉 올라오는 모습이 반갑다. 쑥쑥 자라서 한 뼘의 키로 자랐지만 야들야들하다. 햇볕 맛을 모르고 자랐어도 제법 무성할 만큼 줄기가 많다. 대견스러울 만큼  잘 자라서 놀랍다.  


창가에 비치는 겨울 햇볕은 바람을 제거하면 따사로운 솜이불 같다. 햇살 좋은 날, 창가에 무청이 자라는 그릇을 옮겨 주었다. 햇볕 맛을 본 노란 무청이 힘이 생겼다. 그새 광합성 작용을 신나게 했나 보다.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빨아먹듯이 햇볕을 쭈욱 쭉 흡수했나 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무청이었다. 햇볕 맛본 지 몇 시간이 안 됐는데 힘이 생긴 듯 빳빳하게 생기가 돈다. 샛 노란빛이 아니다.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신통방통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조금 더 일찍 햇볕 맛을 못 보여주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신선한 물을 보충해서 싱싱함을 독려한다. 이대로 무럭무럭 자라면 무엇을 할까?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 속에 100-7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