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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Jul 23. 2022

맘친구, 꼭 만들어야 할까요

아이의 친구는 아이가 만든다

최근 들어 휴대폰 화면에 문자 알림이 뜰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증상을 겪고 있다. 육아가 어느정도 익숙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건지 한동안 느슨한 일상을 만끽하던 중 불현듯 찾아온 긴장감이었다.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거나 정체불명의 물건을 입 안에서 오물거리고 있을 때를 제외하곤 크게 신경쓸 일이 없었던 요즘이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발신자는 최근 놀이터에서 만나 번호를 주고받았던 아이 엄마였다. 번호를 교환한 이후 간간이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하는데 문제는 문자가 오는 시간대였다. 매번 그런건 아니지만 심심찮게 밤 열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나 신문이 도착할 무렵인 이른 새벽에 문자를 보내왔다.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처음 한두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아이를 재우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느슨해지고 싶은’ 시간마다 문자가 종종 오면서 해당 아이 엄마와의 연락은 스트레스가 됐다. 아이를 낳기 전 마지막으로 이런 기분을 느껴본 건 직장 생활하던 시절 밤늦게 업무 연락을 받았을 때 였다.  


왜 늦은 시간에 연락할 수 밖에 없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낮에 아이를 챙기느라 깜빡하고 답장을 못했다가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미안한 마음에 다급히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게다가 또래 아이를 육아하는 대부분이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갖고 있다는 걸 알기에 늦은 시간에도 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또 이해하고 싶기에 연락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다.


또 하나 난감한 점은 문자를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로 아이는 잘 있는지, 오늘 잘 지냈는지, 오늘 하루 힘내보자는 안부 문자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심스러우면서도 어색한 안부 문자를 주고받고 있으니 과거 소개팅남과 썸을 타던 시절 주고받은 문자들이 떠올랐다. 소개팅남과의 문자는 설렘을 동반한 긴장감이라도 있었으나 아이 엄마와의 문자는 의미없는 긴장감으로 피로감만 더할 뿐이었다. 아마 상대방도 이런 관계가 익숙하지 않아 나와 비슷한 입장에서 여러번 고민하고 안절부절하는 마음으로 문자를 이어나갔을 수도 있다. 누구나 엄마라는 자리가 처음이라면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즐겨 갖고노는 부릉이 운전대

이쯤되니 또래 엄마인 소위 ‘맘친구’가 거의 없는 나로서는 다들 또래 엄마와 사귈 때 어떤 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지 궁금해졌다. 독박육아를 견뎌내면서 까칠해질대로 까칠해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들 어느 정도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아이를 위해 맘친구를 만들고 있는지 말이다.


관계 맺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랐다. 육아를 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의 학부모가 아니면 번호를 교환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매일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저녁까지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엄마의 평소 관계 성향이 또래 엄마를 사귈 때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한 친구는 놀이터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아이 엄마들과는 거의 친해진 적이 없었다며 우연히 동네에서 알게된 아이 엄마와는 성격이 잘 맞아 가끔 만난다고 했다.


두루 관계를 맺기 보단 소수의 친구와 깊게 사귀는 걸 선호하는 나로선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가 참 어렵다. 취향과 성향이 뚜렷해지는 삼십대에 접어들면서 더 어려워졌고 특히 또래 아이의 엄마와의 만남은 더 조심스럽다. 나도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에게 호기롭게 번호를 물어본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연락해서 만남이 성사된 적은 거의 없다. 상대방이 부담되진 않을까, 혹시 아이들끼리 만나서 다투거나 다치면 어떡하나, 육아방식이 달라서 어색해지면 어쩌나 등등 늘 쓸데없는 걱정들이 연락을 가로막았다.


어차피 어린이집에 가게되면 또래를 실컷 만날 수 있을테니 억지로 맘친구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외면할 수 없는 불안이 있다. 또래와 어울리면서 기를 수 있는 친화력과 사회성이 결여되면 어쩌나하는 마음.


그러던 중 최근 아이와 아침마다 놀이터에 나가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매일 다양한 연령대의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데 그 중에서도 아이가 호감을 표시하며 따라다니는 친구들이 생겼다. 아이에게도 자기가 좀더 편안하게 느끼거나 또는 호기심이 생기는 대상이 분명히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또래와 성별인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인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아이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나타나면 다가갈 것이고 언젠가는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엄마가 동네에서 사귄 맘친구들의 자녀들과 친구가 된 적이 없다. 당시에는 멋모른채 같이 놀았겠지만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다. 기억 조차 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기억이 있더라도 이름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지금  아이보다 좀더 자란 초등학생  일이긴 하지만 당시 부부모임에서 엄마가 나를 또래 무리에 억지로 끼워넣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혼자 매우 민망하고 어색해했었던 일이 지금까지도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일단은 서둘러 맘친구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친화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엄마가 아이를 위해 친구를 찾아나설 생각을 하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서 서성대는 기분이 든다. 육아를 한다는 점, 아이가 비슷한 또래라는 공통점이 좋은 친구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니까. 심지어 아이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아이의 친구는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대신 공원이나 도서관 등 또래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을 종종 방문해 아이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부지런히 만들어볼 생각이다. 공원에 갈 때마다 자주 보게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내 아이와 익숙해지고 친구가 된다면 그때 아이 엄마와도 번호를 교환하고 다른 곳에서의 만남을 제안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좋은 인연이 닿게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때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친구로서 만남을 이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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