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를 지우고 싶은 날에도 쓴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by 김민준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주 1회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와 비교했을 때 글을 쓰는 행위에 임할 때의 마음가짐에서 의무감이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 사실을 이전 글에도 썼었다. 처음엔 단지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썼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렇게 의무감을 느끼는 '나'도 글로 남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의무감을 넘어서 그저 일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자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정해진 업무처럼, 해야 하니까 한다는 무감각한 상태. 왜 써야 하는지조차 마음속에서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그저 무의미한 감정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적잖이 놀랐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느꼈던 설렘, 첫 연재를 올리던 날의 조심스러운 떨림, 몇 분 안 되지만 내 글에 반응해 주신 독자분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뭉클한 감정들. 그 하나하나가 분명히 내게 의미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기뻤던 순간들이었고 날 살아있게 해주는 감정들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느끼는 이 공허함은 더욱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기분에 휩싸여있는가 스스로 돌아보며 살펴보았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는데 뭐든 쓰긴 해야 했고 그동안 무엇을 주제 삼아 써왔는지 보자 싶어 내가 써온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나'로 존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니까."


이 문장을 읽는데 순간 이런 느낌이 확 올라왔다.


"'나'로 존재해? 그래도 되기는 한 건가? 나란 놈이 존재할 수는 있는 건가?"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믿고 '존재하겠다'라고 말했을까. 그 말이 정말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 세상에 나란 놈 하나 없어져도 누가 찾기는 할지, 나 없다고 세상 돌아가던 게 멈추지 않을 테지, 그러니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들이 한가득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이 안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글을 써나가야 할지 모르겠는 지경에 다다른 채, 마냥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눈앞에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고, 그 깜빡임조차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뭐라도 쓰고 싶었지만, 손끝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내면에서 폭풍처럼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묶어버렸다.


이대로라면 글을 끝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주 1회 연재'라는 내가 직접 내걸었던 약속도 지키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인생 최초로 느꼈던 성취를, 내가 한 달 만에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아직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뚜렷한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내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의 대부분은 회피였고 자기 합리화였고 결실을 보기 전의 종결 혹은 포기였기에, 그리고 내가 그래왔다는 것을 지금의 상황을 몸소 부딪쳐가며 그렇게 복기하며 깨달았기에 같은 수순을 다시 밟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못났어도 내 인생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낸 삶이다. 성과 없고 결과 없지만 이런 그대로의 모습이 '나'다. 이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진 이러한 나를 인정하는데 집중해 왔다면 이젠 인정했으니 더 나아지려고 해야 하지 않겠나.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어떻게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그 초심을 잊지 않아야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나'를 글로 쓰는 것. 그렇게 독자들이 나의 모습을 보았을 때 조금이나마 동질감을 느끼며 위안을 삼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는 걸 알리는 것.


내가 쓰는 글의 끝 마무리조차 어떻게 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이 상태 그대로를 남겨보는 거다. 그렇게 남기는 동시에 좀 더 나아가는 거다. 멈춰있는 순간을 남기는 것이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하려니 모순된다고 느끼지만 사실이 그러한 걸 어찌하겠나. 뭐든 해야 한다. 당장은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무언가가 될지 모를 일이니까.


누군가가 나의 글을 봐주기 전에 이 글은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글인 셈이다.


혹시 이 글을 누군가 읽는다면, 이 글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당신에게 이 감정이 옮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오늘을 버티는 한 사람의 마음으로 남겨진 이 문장을 당신이 무사히 지나쳐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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