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과거를 딛고 서는 마음

남을 지키는 마음에서 나를 지키는 마음으로

by 김민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와 아내는 성향이 참 많이 다른 편이다. 사고방식에서도 그런 편이고 이런 부분은 육아방침에 있어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래서 이전에도 많이 다퉜지만 육아를 하게 되며 순간순간의 상황들에서 짧고 깊게 싸우는 편인 것 같다.


최근에도 그랬다. 정말 찰나였다. 싸웠다기보다는 아내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서운한 부분을 거친 감정과 함께 내게 퍼부은 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상황을 차분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새도 없었다. 아이를 재우려고 방에 들어온 이후에도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하고 있음을 알렸다.


어찌어찌하여 아이를 재우고 나니 그제야 아까의 상황에 대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더불어 질문들도 떠올랐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문제였던 것일까?”


이 물음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내 안 깊숙이 자리한 오래된 기억과 감정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것이다. 어느 누가 의도를 가지고 그러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언행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혹감과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이는 아마도 다른 누군가의 무심한 말이나 행동들에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유년 시절 대부분 교우관계가 좋지 못했다. 대략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정도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성격이 적극적이지 못했고 몸집이 왜소했던 데다가 상황에 따라 눈치 없이 행동하는 나의 모습이 친구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무시당했다.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정말 말 그대로 없는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소위 말하는 '왕따'였다.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다른 아이들이 내게 이러는 것인지 그 당시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 힘들었다. 차라리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난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정말 미웠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아이들을 미워하는 감정조차 품지 못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다만,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미워하고 욕하려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은 그 아이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 아이들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다짐은 마치 나의 좌우명처럼 나의 내면에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에, 각자의 삶을 살면서 의도치 않게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특히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 원인으로 작용해 상호 간에 다투고 상처를 주는 것은 제법 흔한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류의 다툼이 끝나면, 늘 같은 자리에 선다. 그날 밤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의 감정이 나에게 남아있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다툼의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상대가 힘들었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내 탓 같았다.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려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했고 그래서 저 질문을 끊임없이 붙들고 늘어졌다. 그렇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될 수 없었다. 다투는 상황에서도 이유 불문하고 상대가 힘들면, 그건 이미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명백히 잘잘못이 갈리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에 따라 충분히 이해될 법한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마음속에서 ‘혹시 내가 그때의 그 아이들처럼 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런 마음은 나를 지치게 했다.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책임을 짊어지려 하니 금세 소진됐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라 여겼고 고쳐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표정 변화를 민감하게 읽었고, 말 한마디의 무게를 고민했다.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습관을 가지게 해 주었다. 여전히 부족해서, 때로는 표정이 변해도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는 하지만 적어도 이젠, 내가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찾아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수월해졌다랄까. 당장 바꿀 수는 없을 테니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면서 나의 이런 모습을 수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안다. 나를 지키는 것이 곧 남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내 마음을 소진시키지 않아야, 나 스스로 여유가 생기고, 그래야 나 자신의 언행을 지켜볼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또다시 누군가를 힘들게 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행복한 내가 있어야, 내 주변의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이젠, 나의 내면에 있던 과거의 그림자를 딛고 서려한다. 조금은 나 자신에게 관대해져보려고 한다. 소진시키기보다는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더 노력하는 그런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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