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지금의 한걸음을 선택하다
교습소를 정리한 이후 한동안 불안정했던 경제활동은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예전에 일했었던 학원에서 구인공고를 올린 것을 확인하고 원장님께 연락드려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지금은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다. 학원은 오후에 출근하므로, 남는 시간을 활용하고자 오전에는 과학키트 조립 수업을 운영하는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 거기에 주말에는 과외를 하고 있고 더 나아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처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경제활동에 투자하고 있고 글도 쓰고 있지만 이런 과정마저 내게는 답답했다.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급여는 받지 않았고 오전에 일하게 된 것 역시 교육을 받는 중이었기에 본격적인 일은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글 쓰는 것 역시 주마다 연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언가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 상황.
이러한 어정쩡한 상황이 싫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투자하고 있지만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삶을 통제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글까지 썼거늘 그때의 다짐이 무색해질 지경으로 마음이 바빴다. 분명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었음에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지친 나머지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바쁜 마음으로 돌아보다 브런치 계정에 시선이 꽂혔다. 구독자 수는 보잘것없고 글을 쓰고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찾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구독자를 늘리고 싶었고 더 나아가 이왕이면 수익창출도 겸하고 싶었다. 그렇게 여유 있게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작가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더 써보겠다고 나섰다. 글을 자주 올리면 아무래도 독자들에게 좀 더 나의 글을 노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연재해 온 글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거나 정보의 전달과는 거리가 다소 멀었기에 독자들의 입장에선 다른 글들에 비해 찾을 이유가 적다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지금 내 직종인 수학강사에서 비롯된 경험들을 글로 녹여내보고자 했다. 나름 여러 학생들을 지도해 왔다고 생각했고 관련된 통찰이나 에피소드도 있기에 글을 써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마음먹은 김에 그 자리에서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멋들어지게 프롤로그도 작성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 어느새 다음 글을 연재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연재할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 이것저것 써보고 문장들을 엮어봤지만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서론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브런치북을 기획할 때만 해도 글감이 넘쳐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자리에 앉으니 대체 무엇을 글로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한참을 고군분투하며 무언가를 쓰기는 했고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문단 몇 개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내 글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싶기는 한 건지 스스로가 의문이었다. 글을 쓰는 과정이 신나지 않았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고민하고 지우고 다시 쓰며 다듬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어색하고 억지스러웠다. 글을 쓰면서 몰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 몰입 가운데 글을 쓰고 써 내려가는 문장들이 진정으로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살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들이 너무 불편했다.
내가 써낸 문장들은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던 탓이었다. 잘 되고 싶다는 마음이 깃든, 그래서 독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그러한 문장들이었던 것이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 없는 글이었다. 목적도 없고 주제도 없고 그저 겉멋만 잔뜩 들어간 문장들이었다. 그 겉멋마저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필력의 한심한 밑천만 잔뜩 드러날 뿐인 그런 문장들. 이대로 발행을 하고 연재를 이어갔다가는 안 하는 것만 못한 것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새롭게 기획한 브런치북의 연재를 포기하기로 했다. 야심 차게 기획했던 나의 두 번째 브런치북은 그렇게 싹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현재의 나는 내 직업에서 비롯된 통찰력도 부족하고 그 부족한 통찰력을 글로 엮어낼 만한 필력도 되지 못한다. 시작은 호기로웠지만 욕심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연재도 요일 지키는 것 하나에 허덕이는데 새로운 브런치북이라니.
시작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하루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의 이면에는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숨어있었다. 지금의 불확실성을 못 견뎌하는 마음이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글의 원천은 나의 내면이고 자기 객관화인데 나는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고 글은 내면이 아닌 외면에서 시작되려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결과를 쫒기보다는 과정에 집중하자고. 잘 되려고 하기보다는 지금에 집중하고 발 한걸음 옮기는데 최선을 다해보자고.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온전히 '나'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겨보자고.
이 행위와 기록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거라고 믿으며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을 기록하겠다고 재차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