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머니...아버지...

서툴렀지만 온전히 나를 향한, 그렇게 나를 빚어준 뜨거운 사랑

by 김민준

나에게 부모님은 애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쌓여온 수많은 일들과 기억들이 뒤섞인 탓이었다. 분명 날 사랑하시는 분들이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날 위하시는 분들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어째서 이토록 날 힘들게 하시는지. 내가 잘 되길 바란다는 마음인 것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왜 말씀하시는 것이나 행동하시는 것들은 정반대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님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의 '학업'에 매우 맹목적이셨다. 비싼 돈을 들여 개인과외 선생님을 구해주시거나 유명 대형학원에 보내는 등, 어머니께서는 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셨다. 어머니에게는 학업이 자식들의 행복과 성공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그 수단을 실현하기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다.


어찌나 맹목적이셨던지 어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교우관계가 좋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무심하셨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어머니께선 결코 무심하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분명 어머니에게 학교에서의 상황에 도움을 요청했던 기억이 있고, 반면에 어머니께서 나의 보호자로서 어떻게 대처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학교에서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가운데, 어머니께서는 그저 나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으셨던 기억이 뚜렷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맹목적인 어머니 덕분에 그래도 공부는 제법 잘하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뛰어나게 잘한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시험 점수 평균을 계산할 때 90점은 늘 넘었지만 95점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공부가 아니었다.


학생 중 그 누구가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겠냐만은, 해야 해서 하는 공부라고 해도 그 당위성에 대해 납득을 하는지, 혹은 납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강제성을 띄고 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했고 주말이 되면 나가 놀고 싶은 나와 밀린 학습지와 교재를 공부시키려는 어머니 사이에 끊임없이 큰소리가 일어나고는 했다.


반면,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거의 개입하지 않으셨고, 어머니의 방식을 조용히 지켜보실 뿐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공직생활에 충실하셨고 그렇게 가정의 재정을 책임지시는 큰 역할을 하셨지만 그뿐이었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그저 공부만 잘하라고 하는 기조로 나를 다그칠 때, 내가 나름의 방법으로 힘들다는 것을 표현해도 아버지께선 그저 지켜만 보실 뿐이었다. 한 번쯤은 어머니를 말리거나 혹은 두 분이서 따로 대화를 하는 식으로라도 개입하실 수 있었을 건데 전혀 그러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뜨거운,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과 아버지 특유의 무심함은 안 그래도 학교에서의 상황들로 힘든 나를 더 힘들게 했다.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힘든데 그런 내 입장에 대해 헤아리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부모님에 대해 나는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궁금했고, 왜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 왜 남들 다 하는 방식대로만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런 나의 의문을 이해하거나 받아주지 못하셨고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셨다. 나는 그런 부모님이 미웠고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진심이 오고 가는 속 깊은 대화가 단절된 채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딸을 키우는 아빠가 된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처음 부모가 되신 분들이었고, 나를 향한 사랑은 분명했지만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최선을 기준으로 삼아 나를 사랑으로 키우신 것이다. 마치 내가 지금 내 딸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내 스스로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용기가 많이 부족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움받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했고, 모두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어야 했다. 내가 생각할 때 맞다고 여기는 것은 강단 있게 선택하고 실천해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로서 온전히 살겠다고 선택할 용기가 부족했다. 그렇게 나는 온전한 '나'로서 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기준에 맞는 사람으로 살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 그렇다. 내 글을 봐주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현재 재정상황에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억지로 쓰려고 하지 않는 것. 누군가가 잘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쓰지 않고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솔직한 모습 그대로 글에 담으려고 하는 것. 지금의 이 행위가 나에게 있어서 스스로를 위하는 것인 셈이다. 그동안 내지 못한 용기 마음껏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비록 많이 힘들었고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셨기에. 그리고 그런 힘든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투르셨고 잘 모르셨지만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마음을 모두 쏟아내 주신 그 사랑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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