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존감? 낮아도 괜찮다!

'나'를 응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by 김민준

나는 자존감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낮다 못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선택하고 나아가는 길들에 대해,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그 질문은 바깥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내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래서 나의 모든 시선은 안쪽으로 향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 하나 뚜렷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물음표와 질문들이 쌓여만 갔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부모님의 세계 안에서, 그런 나의 내면은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유년기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기에,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곧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도 같았다. 게다가 나는 눈치가 없었다. 그 특성은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는 소위 ‘왕따’였다. 학교를 가는 것이 두려웠고 누군가가 나를 주목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떻게든 나를 숨겨야만 했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나라는 사람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은 낮아지고 낮아지고 소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건 군 전역을 한 이후에 대학생 생활을 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자존감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생경했다. 어찌나 그 의미들이 내게 낯설었는지 당황하는 정도가 아니라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내가 자존감이 낮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었다는 반증이었을 테다.


그 이후에는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모든 집중을 다 했다. 그때 당시의 내가 목도하고 있던 상황들의 모든 문제점들은 자존감이 낮은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기에 어떻게든 자존감을 회복해야만 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산적해 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눈에 띄는 대로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으며 이런저런 것들을 실천에 옮겼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묘했던 건, 난 내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결국, 명분만 달랐을 뿐이었다. 겉으로는 '자존감 회복'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 내가 한 일은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해답을 찾기 위한 것들이었다. 본질적으로 집중한 행위 자체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상황이 해결될 리가 없었다. 유년기 평생 동안 얻으려 했던 답을 갑자기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평생의 질문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니, 나의 행위는 나 자신으로부터 지지를 잃었고 그렇게 나의 있지도 않았던 자존감은 더 옅어졌다.


그렇게 수난의 시기를 겪으며 30여 년을 살아온 지금 이 순간, 그래도 예전보다는 자존감이 좋은 편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며 말해보자면,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론에 집중하는 것보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인 것 같다.


자존감은 낮을 수도 있는 것이지 낮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높게 유지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환경들이 모두 나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우호적이지만 않으면 다행이고 적대적인 경우도 상당하다. 그런 많은 경우들을 맞닥뜨리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요인들 가운데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자존감이 낮은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도 있다. 스스로를 북돋을 힘이 없을 만큼,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고착화되기도 한다.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저평가하는 상태가 디폴트인 것.


앞서 말했듯이 그럴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말아 보자. 그러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행위이니까. 스스로에 대한 그런 시선과 대우 자체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아껴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니까.


나 역시 이러한 상황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지나왔다. 수없이 자신을 부정해 왔고 나 자신에 대해 무엇 하나 자신 있게 알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못 미더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부족하다. 하물며 아직까지도 내 삶은 방황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차 나 자신을 응원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한 답을 모른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 답을 알려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나의 모습만으로도 난 응원받아야 마땅하니까.


자존감은 낮아도 된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놓치지 않고 계속 질문하며 버텨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나를 증명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것이 자존감이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기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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