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벽을 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예전에 일했었던 학원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한 지 어느새 3주 차가 되었다. 몇 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시간의 흐름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이곳의 원장님은 여러모로 좋은 분이다. 강사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셔서 탕비실에는 항상 캡슐커피와 커피머신이 준비되어 있다. 컵라면과 컵밥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으며 식사시간은 항상 별도로 보장해 주신다. 시험대비 특강이나 방학 특강 같은 추가 수업이 있을 땐 시급을 별도로 계산해 보너스를 챙겨주신다. 나이로 보나 직위로 보나 말을 놓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으시고, 필요하면 강사들의 일을 직접 도와주기도 한다. 간섭은 최소화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일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눈치를 주지 않으시는 분 앞에서 나는 자꾸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질문 하나를 하려 해도 괜히 긴장하고 있었다. 질문해도 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질문을 해야겠다 생각한 이후로는 질문할 타이밍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자존감이 낮았고 경험도 많이 없었기에 안 봐도 될 눈치를 살피고 질문은 아예 피하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요즘에는 어지간해서는 불필요한 눈치는 보지 않고 자신 있게 질문하고 행동해 왔기에 스스로 생각했을 때 다소 당황스러웠다.
왜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보지 않아도 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며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원장님이 내 시야에 나타나기만 하면 움찔하면서 눈치를 살피는 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계속 그렇게 눈치를 살피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을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혼자 눈치 보고 고민하고 불편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모습을 인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스스로 생각해 본다고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날들이 무수히 이어졌다.
그렇게 답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을 이어가던 어느 날, 문득 뇌리에 깨달음이 꽂혔다. 나의 과거에서 비롯된 습관이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던 때에는 주목받는 것이 두려웠다. 주목을 받으면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존재감을 최대한 지워야 했다. 그렇게 하면 날 괴롭히던 아이들이 나 대신 다른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잔뜩 움츠렸고 해야 할 행동과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기준에서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앞에 나서지 않기’와 ‘안전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기’가 내 방식이 되었다. 누군가의 지시, 명확한 규칙, 다른 사람의 뒤에 서는 것이 내 안전지대였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않고 어디서든 묻어가려고 했다. 이러한 나의 삶의 기조는 나를 수동적이고 타의에 움직이는 삶을 살게 했다.
되돌아보면, 누군가가 시키는 일 혹은 가이드나 규칙이 분명한 일은 잘 수행했지만 내가 능동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들에는 취약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이 그렇다. 원장님은 나를 동등하게 대우하며, 최소한의 가이드 이외에는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되, 항상 주시하고 계신다. 나의 언행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피드백을 주신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수업의 내용이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구조인 것이다.
나의 이런 모습들을 깨닫고서는 제법 놀랐다. 과거의 힘들었던 상황들에 대처하고자 나도 모르게 해 왔던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습관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덕에 학창 시절을 비교적 무탈하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 나는 능동적으로 살 기회를 놓쳤다.
별 일 아니지만 아무도 지시하지 않은 것을 하고 있는 동료 선생님을 바라보며 생경함을 넘어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습관을 이제는 깨보고자 다짐한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용기를 내보자고 했으니 이젠 능동적으로 움직여보는 거다. 주목받아도 되고 그런 자리에서 실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거다. 실패하는 경험이 쌓여나가야 배우는 것이고 그런 배움에서 성장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는 거다. 이제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