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졸업식을 위해

24년 2월 둘째 주

by 안녕 테비


우리나라는 3월 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새 학기인 3월이 되면 학생뿐만 아니라 봄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이 설렘을 가지고 새 출발을 위해 다시 발돋움한다. 1월에 세운 계획이 점점 멀어짐을 느끼는 시기에 다다를 즈음 3월이 오기 때문에 계획을 재정비한다거나, 3월이니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3월, 새 출발을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 12월 말부터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서늘함은 동면을 준비하는 동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불속에서 쉴 수 있었던 예전과 다르게 방학도 짧고 따뜻한 아랫목을 바랄 만큼 방 안의 온도차가 심하지 않지만 방학이 주는 안도와 쉼은 봄을 위한 쉼표임은 분명하다.


쉼표 못지않게 마침표를 찍는 사람들도 있다. 연말을 기점으로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도 있을 테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 집 청소년도 다음 학년을 위해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대면(비대면과 대면을 구별 짓는 시대를 살 줄이야) 졸업식이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코로나로 부모 참석이 되지 않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끝나고 나서 데리러 갈 때 꽃다발 대신 풍선을 줬지만 이제는 졸업식 참석이 가능하니 꽃을 준비했다. 이번 주 졸업식이 많아 꽃집에서는 일찌감치 지난주 금요일에 꽃 주문을 마감했다. 다행히 졸업식에 들고 갈 꽃다발을 주문했다. 마감을 임박하고 주문한 나는 사장님께서 원하는 스타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마음대로 해달라고 했다. 사장님 솜씨를 믿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노란색과 흰색이 조화로워 마음에 든다.

청소년을 위한 꽃 준비는 마쳤다. 졸업식 전날 직장 동료가 꽃집에 잠시 같이 가줄 수 있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 청소년 꽃다발을 주문한 곳이 아닌 옆동네 꽃집이다. 이곳도 단골로 종종 들렀다. 온 동네 꽃집이 졸업시즌으로 꽃이 꽃집을 뒤덮고 있지만, 여기는 그 못지않게 식물도 꽤 있다. 큼지막한 식물은 언제나 눈길을 끈다. 큰 만큼 가격이 비싸서 섣불리 물어보기 힘들어서 그렇지, 작은 식물보다 큰 식물이 주는 위압만큼 집에 드려놓으면 한껏 편안함을 동시에 준다. 잔 주름의 웨이브가 드리워진 초록잎이 예쁜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고사리류인 걸 알아차렸다. 한동안 식물을 키워본 적 있는 나는, 의외로 고사리류에 반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키우기 까다롭지 않고 번식력도 좋아서 오래 두고 보기 좋은 식물이다. 이 식물의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고사리류임은 틀림없다.

사장님께 식물 이름을 물어봤다. ‘디바나 고사리’라고 알려주신다. 작은 사이즈는 없냐고 물었다. 펼쳐진 잎이 50cm는 족히 넘겠다. 사장님이 작은 사이즈는 없다고 했다. 농장에서 식물을 구입해 오시는 사장님이라 언제 매장에 들일지 장담 못한다. 농장을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가더라도 수형이 예쁘거나 다양한 크기의 식물이 매번 있다는 보장도 없다. 망설여진다. 눈을 조금 더 돌려보니 내가 갖고 싶어 했던 식물 몇 가지가 보인다. ‘아비스 고사리’는 키울 때 그다지 눈이 가지 않았던 식물이다. 일자인 잎이 멋스럽지 않았는데 풍성해지니 적당히 커서 뿌듯함을 맛보기에 좋은 식물임을 요가원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자태를 보며 알게 되었다. 작은 포트에 담긴 ‘아비스 고사리’를 보며 사장님께 이 화분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노란 잎이 두어 개 있어서 팔 수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오늘따라 조금씩 아쉽네.

요가원에 있는 아비스 고사리


이미 마음은 얘네들에게 매료되었기에 빈손으로 나가자니 눈에 밟힐 것임이 분명하기에 크지만 ‘디바나 고사리’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가격이 5만 원 미만이다.(휴…) 몇 주 전에 읽던 소설 구절 때문에 2년 만에 단골 꽃집 방문하며 난을 들였다. 직장동료와 방문한 꽃집에서 내가 신나 식물을 또 하나 들이게 되었다. ‘디바나 고사리’를 구입하며 팔 수 없다는 ‘아비스 고사리’까지 덤으로 얻어왔다(신엽이 나고 있어서 잘 키워보라며 주셨다). 몇 주 사이에 식물이 세 개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자제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예전에 우후죽순으로 구입하던 때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모두 TV 옆에 자리 하나씩 내어주었다. 아침에 흙을 만져보니 말라있어 물을 듬뿍 주었다. 베란다에 여남은 식물도 둘러봤다. 싹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개는 살아있다. 겨울을 용케도 버텼다. 베란다 식물에도 물을 주고 갈색으로 죽어있는 화분의 흙도 정리했다. 빈 화분이 100개 가까이 된다. 흙을 버리고 화분을 포개고 있으려니 다시 또 초록색을 심는 장면이 머리 위로 떠오른다. 웅크리는 겨울의 끝자락인가 보다. 파릇파릇한 초록잎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화분에 초록을 심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가로수에 틔어오는 새싹을 바라자고 생각한다.

구입한 디바나 고사리
구입한 아비스 고사리

나를 꽃집으로 데리고 간 동료는 청소년을 위해 꽃다발을 준비한 모양이다. 짐작을 못했다. 무심하게 뒷좌석에 꽃다발을 주며 ‘쌤, 편지 읽어보지 마세요.’ 한다. 청소년 친구를 위해 나도 작은 꽃다발을 주문했다. 뭐, 졸업식 당일 누구를 줘야 할지 갈피 못 잡는 꽃다발이 되었지만. 졸업식 당일. 청소년은 나를 찍사로 열심히 부려먹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혼자 집으로 가려다 근처에 일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점심을 먹었다. 얼마만의 졸업식 풍경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모두 꽃다발을 들고 지나가는 친구들을 붙잡고 한 장이라도 더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고. 비록 점심은 같이 하지 못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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