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테비 Apr 12. 2024

키친 툴

�️ 스틸 라이프(靜物畵)006. 키친 툴 답장


코너스툴님께 받은 <키친 툴> 편지에 대한 짧은 답장입니다. 편지는 유로 서비스기 때문에 전문을 인용할 수 없는 점 이해 바랍니다.


지난주 ‘돌’에 이어 이번 주 ‘키친 툴’까지 신선한 소재였다. 보통 주부들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부엌, 주방이 익숙한 공간이지만, 친한 공간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요리는 맛있는 음식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때 되면 하는 익숙한 동작에 가까운 무미건조함으로 다가온다. 이번 주 ‘스틸 라이프’에 답장을 따로 하지 않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항상 편지의 마지막에 코너스툴님이 질문을 준다. 이 중 요리 도구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요리라는 ‘행위’와 관한 다양한 이야기도 궁금하다는 문장에 포커스를 맞춰 답장을 쓴다.


안녕하세요? 코너스툴님

오늘부터 비염으로 재채기를 한다고 정신없는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도 벚꽃이 지고 다른 꽃들이 피기 시작했겠죠?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 소재도 뜻밖이었습니다. 키친 툴… 뭔가 익숙한 듯 낯선 단어에 뭐지? 하고 있는데 답장을 위해 코너스툴 님을 부르면서 아하!로 바뀌었네요.

코너스툴, 키친 툴 라임이 입에 붙습니다(히힛).

이번주 답장은 꽤 어려웠습니다.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편지 같아 무거웠거든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주방의 무게. 올해는 주방 용품과 친해져야겠다는 작은 목표에 나는 과연이라며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몇 달 전 세 식구가 앉아 나눴던 대화입니다. 티비를 보다가 생각이 났는지, 눈앞에 음식을 두고 했던 말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화 앞에 나는 엄마(친정엄마)가 해 준 어떤 음식에 대해(음… 이쯤이면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기나 한지 매우 의심스럽군요)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청소년에게 불쑥 물었죠.  


“ㅇㅇ아, 니는 나중에 커서 엄마 음식 기억나는 거 있겠나?”

“김치찌개? 엄마가 해 준 김치찌개는 맛있으니까.”

“과연 그럴까? 엄마가 생각하기에 나중에 니는 엄마가 해준 음식보다 어떤 배달음식이 맛있었다를 기억할 거 같은데.“

김장때 듬근 총각김치

이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죠. 우리 세대는 엄마가 해준, 어릴 때 먹던 집 음식을 향한 향수가 있지만 지금은 외식에 각자 바쁜 저녁 시간을 보내는 터라 일주일에 몇 번밖에 얼굴 맞대고 밥을 먹지 않잖아요. 그러니 향수가 생기기나 할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서 들었는지 읽었는지 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방에서 나는 소리 중에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라고 한(읽은)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어떤 소리일까. 밥 짓는 소리? 기계 목소리로 밥이 다 되었다는 소리 직전 김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좋아하는지,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좋아하는지, 도마소리를 좋아하는지. 음식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 소리들을 정겨움으로 듣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날도 가족들에게 주방 소리 중에 어떤 소리가 가장 좋은지 물었던 기억만 납니다.


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정겨움은 몇 살까지 일까요. 결혼 20년이 다 되어가니 이제 따뜻한 음식을 향한 정겨움이 아니라, 코너스툴님 표현 중 있었던 feed를 위한 준비라고 여겨집니다. 아침도 바쁘게 먹고 일과가 끝나고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음식 같아서 저도 청소년에게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배를 채우는 행동 같다고 얼마 전에 얘기했습니다. 단순히 먹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 Feed를 보는 순간 청소년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키친툴(주방도구)을 보며 따뜻한 정서보다 주방에 찌든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대했지만,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가족과 하고 있었네요. 항상 밥은 먹는지 뭐라도 먹고 다니는지 걱정스러움과 염려가 섞여 있네요.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청소년 아버지께도 몇 시에 퇴근하는지 밥은 먹고 오는지 묻는 데는 마찬가지 마음이겠죠. 물론 오늘 저녁은 뭘 해야 할지, 국은 남았는지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하하하).

제가 읽은 <화성과 나> 책의 구절을 인용하고 싶네요. ‘밥심, 밥도둑’이라는 단어를 가진 한국인 특유의 분위기를 글로 잘 표현해놓았거든요.  

124쪽밥
도둑은 찬사예요. 위원장님, 들어보세요. 한국인에게 식사를 한다는 건 밥을 먹는다는 거예요. 한국어로는 진짜로 밥을 먹는다고 말해요. 파스타를 먹었어도 밥을 먹었다고 한다고요. 요리마다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건 사실상 밥을 무엇과 같이 먹는지를 표시하는 거예요. 누가 된장찌개를 먹었다고 하면 밥을 된장찌개라는 이름의 스튜와 함께 먹었다는 말이죠. 동시에 먹는 게 아니라면, 다른 음식을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볶아 먹기라도 한다고요. 국물이 있는 음식이면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그러기 어려우면 밥을 푹 끓여서 죽이라도 만들어 먹어요.“


그럼, 코너스툴님이 올해 주방과 친해지길 응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저처럼 비염으로 고생하지 마시고요.


2024. 04. 12. 금, 늦은 밤

안녕, 테비

이전 0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