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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Apr 19. 2024

수정테이프

�️ 스틸 라이프(靜物畵)007. 수정테이프 답장


코너스툴님께 받은 <수정테이프> 편지에 대한 짧은 답장입니다. 편지는 유로 서비스기 때문에 전문을 인용할 수 없는 점 이해 바랍니다.


코너스툴님의 편지는 일요일 밤에 온다. 금요일 연재로 답장을 하고 나면 다음 소재는 뭐가 될지 궁금해진다. 이번 주 편지 제목이 수정테이프다. 다시 책상 물건으로 돌아오셨구나. 수정테이프니까 무언가를 지우는 이야기일까. 메일을 열어본다.

키보드와 마우스도 노란색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샛노란색 연필깎이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지만, 처음 몇 문장을 읽고 마음이 ‘쿵’ 했다. 코너스툴님은 4월이 되면 노란색 물건을 찾는다고 했다. 무채색으로 가득한 방이 야속할 만큼 노란 물건을 찾기 힘들어 기웃거리는데, 마침 노란수정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단다. 4월 하면 우리는 이제 노란색을 떠올린다. 봄이 되면 개나리가 떠오르던 시절은 언제 감정인지, SNS가 발달하니 온통 벚꽃 사진뿐이라 봄이면 벚꽃이 떠오른다. 봄의 상징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설문 조사에 노랑이라고 답했는데. 그런 상큼한 노란 봄날이 이젠 슬픔의 노랑으로 기억되다니. 내 책상의 노란색 물건은 뭐가 있는지 눈을 돌려본다. 노란색이 많다. 노란색을 좋아하니까. 나는 노란색을 4월과 연결 지어 세월호를 떠올려봤던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4월 16일이 다가올수록 노란색이 더 눈에 띠긴 했다. 코너스툴님과 같은 마음이었을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지난 토요일 나는 대구 동성로 중앙 광장(?)에 <세월호 10주기 추모 대구시민대회>에 참석했다. 토요일 낮에 도서관 당번을 서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김밥을 사 오셨다. 대구시민대회에 같이 나가기로 한 지인들을 만나러 오셨단다. 2시부터 4시까지 부스를 운영하고 5시부터 7시까지 추모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나도 가겠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탄핵되는 해까지 계속 세월호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나갔다. 나는 몇 년 만에 광장으로 가는 건지. 그동안 무심했던 마음은 아니었는지. 도서관 문 닫고 동성로로 나갔다. 부스는 마감했고, 쉬고 계시는 관장님을 만나 비어 있는 행사장 맨 뒷자리에 앉았다.

시민 발언이 있다. 관장님이 올라가셨다. 관장님 포함해 북구 동천동(대구 칠곡)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수요일마다 서명 운동을 하러 나가신다. 520번의 금요일이라는 말로 세월호 10주기를 얘기하듯이 이들에게 세월호 서명도 그만큼 오래되었다. 서명받으며 들었던 서운한 이야기도 있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맨 마지막에 아직 수습되지 않은 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는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른다. 관장님은 이번 주 수요일 대신 4월 16일 3시부터 4시 16분까지 세월호 서명을 받기 위해 나가셨다. 10주기인 만큼 많은 관심을 보여달라고 도서관 밴드에 게시물을 올렸다.

동네 곳곳에서 꾸며온 종이배와 부스 행사중 종이배에 남긴 글자들

대구 하면 불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예전 ‘프로파일러’의 강연을 들었다. 대구에 연쇄 방화, 화재사건이 많아 다른 도시에서 연쇄 방화사건이 나면 도움 요청이 많다고 했다. 나도 기억하는 연쇄 방화사건으로 북구 어느 동네에 자동차 연쇄 화재가 떠오른다. 그것과 함께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다. 오늘 컬투쇼 라디오에서 안전을 주제로 방송을 했는데 가스안전장치 개발 회사 직원이 나왔다. 질문 중에 가장 큰 가스 사고가 무엇이었는지가 있었고, 대답으로 인도 가스사고, 대구 가스사고를 언급했다. 그만큼 대구에도 큰 사고(건)가 많았다.

관장님 발언과 함께 기억에 남는 발언은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표였다. 대구가스폭발과 지하철 참사로 대구도 사고 희생자를 위한 노력에 무관하지 않으며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의 말들을 했다.


우리가 상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세월호 같은 국가적 재난이 또 일어나 상주를 또 만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이 맥락의 문장)라고 말할 때 가슴이 울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구가스폭발 사고가 배경인 독립출판물(저자의 경험이 있는 작품)

나도 대구가스폭발 사고와 지하철 참사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가스 폭발이 있던 날, 고종사촌도 그 길 위를 등교로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그날 조금 늦게 집에서 나갔기 때문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고모 말에 우리 가족은 모두 안도했다. 등교 시간이라 직장인 포함 또래 학생들의 희생이 많았다. 그리고 대구지하철 참사 때는 마침 겨울 방학이라 동성로에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 시간 그 길 위를 지나고 있는 나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관경을 지나쳤다. 사거리를 지나고 목적지에 다 와 가니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간다. 가스 폭발과 같은 한창인 출근 시간은 비켜 갔지만, 몇 정거장 뒤에 도착하는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학생과 가족이 유독 많았다. 집과 학원에 지하철이 다니지 않아 지상으로 이동했지만, 그 길에 내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고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동성로였기 때문에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상가 직원이나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10시쯤 상가들이 문을 여는 딱 그 시간이다. 우리는 대구 중앙로역에 오면 그 당시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을 마주한다.


대구 시민대회에 참석하며 들은 발언으로 ‘안전’에 대한 단어를 곱씹어 본다.

안전 :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


우리는 너무 쉽게 믿었을까.

모두가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 모두가 안전한 국가라고 믿었을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안전은 얼마큼일까.

안전한 국가에 대한 신뢰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오늘 하루(세월호사건 당일), 우리는 단순히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을 기억하기 위해 추모하지 않는다. 국가의 안전이 무너진 날을 추모하며 안전을 기원함이다.

청소년이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해

<이번 편지는 답장 형식이 아닌 블로그에 적은 '노란리본약속' 제목의 내 글을 옮겨온 것으로 대신한다. 세월호사건 당일에 쓴 글이다.>


세월호 10주기 대구시민대회에 참석 후 교보에 들러 코너스툴님이 추천해주신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구입하며 내 방식대로 기억하는 연대로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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