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업

오늘의 작업

2023.8.18

by 어떤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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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반짝이지만 딱딱한 네모판 앞에 앉았다.


이 단단한 평면은 작은 다이아몬드 칼날이 박혀 있는 막대기로 선을 그어 잘라낸다. 무 자르듯이 쉽게 잘리지는 않는다. “베어진다”는 느낌도 없다. 표면을 긁어내는 느낌만 들 뿐이다. 그마저도 처음 유리를 자르는 사람이 느끼기엔 아주 센 저항이다.


판유리 중에는 마블 문양이 들어간 종류가 있는데 이건 더 고약하다. 흔히 “마블 유리”라 부르는 이 판유리는 높은 온도에서 말랑한 상태인—줄줄 흐르는 액체가 아닌 “많이 녹은 캐러멜” 혹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액체 괴물” 같은 상태이다—몇 가지 색의 유리를 섞어 제작되는데 식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블 형태로 굳게 된다. 마블 유리는 단일한 색의 판유리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데 제작 과정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밖에 없는 노동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두세 가지 (혹은 더 많은) 색유리가 합쳐진 것이다 보니 아무리 하나의 새로운 판유리 (덩어리)가 되었다고는 해도 제각각 색의 결이 “은근히” 남아 있다. 여기서 “은근히”라고 표현하는 것은 눈으로 봤을 때 색 간의 경계가 아삼아삼하며, 재단할 때 한 가지 색유리 결 그대로 (노골적으로) 갈라지거나 잘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일반 단일 색유리를 자를 때와는 다르게 엉뚱한 곳에 금이 가며 잘릴 때가 있다. 그래서 마블 유리는 좀 더 자르기 어렵게 느껴지고, 생각지 못한 “로스”도 더 많이 나온다.


판유리 제작 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다이아몬드 칼날로 유리를 서걱서걱 자른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리가. 칼 막대에서 칼날이 나오는 부분은 1-2mm에 불과하다. 손으로 칼날을 잡는 것만으로 다칠만큼 날카로운 것도 아니다. 위에 서술한대로 이 칼날은 유리 표면을 긁을 뿐이다. 그렇게 “자국”이 난 유리면을 반대로 뒤집어 탕탕 두들기면 그 자국 그대로 금이 가며 잘린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공예용 판유리의 두께가 3mm이니 흠집이 난 부분이 약해져 그 선을 따라 갈라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눈에 보이는, 또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미세한 유리 가루가 날린다. 그 가루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리 칼 막대 뒷부분에는 오일을 넣는 구멍이 있다. 오일은 칼날이 유리 표면에 눌릴 때 조금씩 배어나온다.


적다 보니 유리 조각 하나를 구매해 자르기 위해서 수많은 노동이 들어가는구나 싶다.


오랜만에 작은 유리 조각을 배열하는 작업 대신 마블 유리를 자르고 갈았다. 처음 마블 유리를 접했을 때, 오묘하게 색이 어우러진 모양이 예뻐 반해버렸다. 그때 정말 좋아했던 것은 투명 유리와 검은색, 흰색 유리가 섞인 얼핏 보기엔 아주 어두운 유리였는데, 한동안 생산되지 않는다고 해서—현재는 다시 제작되는지 잘 모르겠다—남은 몇 장을 쓰지 않고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언젠가 마블 유리의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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