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업

생산자로 살기

by 어떤 숨



내게 유리 작업은 무언가를 손으로 생산하는 기쁨을 알려준 일이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진 결과물을 “금방”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결코 유리 작업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인문학을 공부했다.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석사 때는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박사로는 좀 더 넓혀 문화사를 공부하려 유학을 갔지만, 수료만 하고 논문은 쓰지 않은 상태로 공부를 그만두었다. 공부는 너무 재미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 알게 된다는 것은 꽤나 큰 행복감을 준다. 사실 내가 공부하는 분야 자체의 어려움, 언어 장벽에서 오는 고충도 컸지만, 뒤늦게 찾아오는 “aha moment”, 이거 읽다 다른 거 읽다 어느 순간 “아!”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지 이 재미로 공부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와 연구를 지속하기에 나는 객관적으로 봐도 배움의 속도가 느린 사람이라 스스로 벅차다 느꼈다. 책을 읽고 고민하고 유의미한 생각과 의견을 제시해야 했지만,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질문들을 내 안에 담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렇게 계속해서 배움을 소비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결국 그 길을 멈추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길임에도 여전히 아주 작은 한 구석에 아쉬움이 있는 건지 어쩌다 가끔 논문을 쓰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는 꿈을 꾸기도 있다—놀랍게도 그럴 때 꿈에서의 지도교수는 박사 때의 지도교수가 아닌 한국에서의 석사 때 교수님이다.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선생님한테 과제 제출 기다려달라는 꿈을 꾸나, 깨어나면 기가 막힌다.


아등바등 해서 ABD—all but dissertation, 수업을 듣는 코스웍을 완료하고 논문자격시험까지 마친 뒤 논문쓰기만을 남겨둔 상태의 박사과정생—까지는 되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물론 죽이 되면 통과가 안되겠지만, 논문에 매달려 무언가를 썼다면 “박사님”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제대로 된” 박사논문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진짜 말도 안되는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도 주변에 보이긴 한다.) 공부는 하는데 (당장의) 나오는 결과물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 누구보다 답답한 건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생산”에 목말라 있을 무렵 내가 만나게 된 유리 공예라는 분야는 그야말로 여기저기 베이고 찢어지고 땀을 흘리며 접한 신세계였다. 내 손으로 자르고 갈고 다듬어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다니. 내가 어떤 공예품을 창작하다니.


유리 작업을 시작한 초기에 멋모르고 마음대로 자르고 갈며 유리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너무 무리해서인지 손목 인대가 찢어진 적이 있다. 유리칼을 쓰는 오른손이 아닌, 오른손에 제대로 힘을 주는 법을 몰라 지탱하던 왼손의 인대가 찢어졌다. 생각도 못하고 삐끗했으려나 지내다가 살갗에 무언가가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고 아파 병원에 가서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길래 손목이 이렇게 됐어요? 손을 되도록 안써야 빨리 나을 텐데요.”

“아 유리 작업하는데요.”

“신기한 거 하시네. 근데 당분간 좀 쉬세요.”

"아..." 하며 웃었지만, '작업이야 쉰다 해도... 애 둘을 키우는 엄마가 손을 안쓰고 어떻게 살아요?'라 속으로 소리를 질렀더랬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왼손을 쓰지 않고 한 손과 팔만으로도 가로 세로 600mm의 유리 한 판을 거뜬히 들고 자를 수도 있을 만큼 요령과 힘이 생겼지만, 그렇게나 처음엔 무식하게 힘을 주며 유리를 다루었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 때였다.


여전히 작업하다 보면 찔리고 베이고 긁히기도 한다. 늘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작업 테이블을 손으로 스윽 훑거나 무심코 조각을 만지다 찔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아픔은 내성도 안생긴다. “악”하고 비명을 지르면 곧 어김없이 빨갛게 스며나오는 핏물. 작은 조각이라도 찔린 상처는 베인 것보다 아픔이 오래 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만드는 즐거움이 커서 공부를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언제 또 다른 일에 눈이 뜰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으로선 바라건대, 내 만족에 그치지 않고 “공예로움”을 나타내는 작업물이 멋지게 나왔으면 하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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