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사람 얼굴을 못알아볼까.
우스갯소리로 안면인식 장애라 하기도 하지만 정말 잘 못알아본다. 스치듯 보는 얼굴과 일부러 자세히 쳐다보는 얼굴이 달라서일까. 자주 보는 동료나 친구라도 하나하나 얼굴 생김새를 뜯어보면 아주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그렇게 시와 때가 달라지면 내 뇌는 다른 얼굴이라고 인식하는 걸까.
작년 겨울 한 페어에서는 일부러 내가 있던 부스에까지 찾아온 친구 얼굴이 낯설어 알아보지 못하고 그 곁에 있던 (친숙하지 않지만) 친구의 동료인 다른 사람을 보고 친구임을 알아차린 적도 있다. 그 친구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얘 얼굴을 기억 못하다니’ 하며 속으로 살짝 놀란 적도 있다.
오늘은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동네에 사는 사촌동생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 먹으러 간 가게가 그 동생네 집 근처라 아이들이 “엄마, 여기 ㅇㅇ이모네 집 근처네.” 라고 말해 생각했던 참이었다.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근처에 가면 늘 생각하곤 했는데 정말 마주칠 줄이야.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걷던 중 마주 걸어오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동네 사람인가 보네’까지 생각했는데 그게 사촌동생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동생이 “어?” 하며 다시 나와 아이들을 돌아가며 보더니 남편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렸다. 아니 몇 년만에 만난 것도 아니고 몇 달 전에 집에까지 놀러갔는데 이렇게 못알아볼 일인가. 게다가 그 동생이 지난 주에 여행을 다녀와 올린 인스타그램 피드의 사진도 보고 좋아요를 눌렀는데. 반가움은 둘째고 눈이 마주치고 얼굴을 보면서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던 것에 좀 충격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반가웠다며 문자를 주고받다가 “내가 늙어서 그런가 뇌 어디가 고장났나“ 했더니 ”아니야, 그냥 언니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거지.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라고 답이 왔다.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 확실히 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며 다니지 않는다—가까운 사람, 좋아하는 사람은 잘 챙깁니다— 그 때문에 예전엔 인사도 안하고 “쌩깐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얼굴을 못알아보는 것과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은 다르다. 얼굴을 보고 지나친 뒤 나중에서야 ‘아 아까 ㅇㅇ였구나’ 떠오를 때도 있는데, 요즘 내 뇌는 아예 인지를 못하는 듯 하다. 얼굴을 잘 보고 다니지도 않을 뿐더러 봐도 잘 못알아보는 건데, 못알아보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당황스러울까.
그러고 보니 상대편에서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누군지 기억을 못해 진땀을 뺐던 기억도 있다.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다양하기도 했다. “나 ㅇㅇ인데, 기억 안나? 우리 중3 때 같은 반이었잖아.” 하면서 아는 척 했던 한 친구는 무려 베이징에서 어학연수 중 한 기숙사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경우였다. “혹시 ㅇㅇ여중 나왔어요?”라며 말을 걸던 그 친구는 나랑 친했던 다른 친구 이름까지 기억하며 얘기하는데 나는 끝내 기억이 안나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했던지 나중엔 그냥 기억나는 척 하고야 말았다.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의 이름.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하고 황당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결론은 사람에 대한 기억력이 아주 안 좋은 걸로. 알고도 모른 척 하는 못된 사람은 아님. 내가 은혜입은 사람만큼은 꼭 기억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