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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Aug 21. 2021

그녀의 "자기만의 방"에서

뉴햄프셔 넬슨 마가렛 할머니의 산장에서 쓰다


뉴햄프셔주 넬슨이라는 작은 시골 타운에 머물고 있다. 이곳 산장에서 여름의 끝자락을 즐기기 위해서다.  산장은 지은 지 220년이 넘은 집이다. 이 고택은 가족의 여름 별장으로, 보스턴의 무더위를 피해 여름을 보내는 곳이다. 남편의 마음의 고향이자 아이의 유년시절 시골체험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남편의 증고조모인 마가렛 레드먼드 Margaret Redmond (1867-1948)의 유훈이 깃든 곳이다. 화가이자 스테인드 글라스 예술가였던 마가렛은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했다. 마가렛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긍지다!






이 여름 별장은 깊은 산속, 대자연에 묻혀있다. 무섭게 들리겠지만 가끔 곰도 나타난다. 정원을 산책하다 보면 곰의 배설물이 종종 눈에 띈다. 나무껍질에 남은 곰의 발톱 자국도 볼 수 있다. 속세와 멀리 떨어져 천상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고요하기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깊은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운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밤에는 수만 개의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 까만 하늘에 점점이 박혀있는 다이아몬드가 빛을 발한다. 보스턴에서 보다 몇 배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캄캄한 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누워있노라면 몇 초 간격으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셀 수 없이 많은 반딧불이 부쩍 자란 풀잎 위에 반짝거린다.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반딧불의 바다는 여름밤의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애석하게도 어제오늘 계속 비가 내려 이번 방문에서는 이 장관을 볼 수 없었다.





오래된 집에는 있을 법한 흥미로운 스토리가 이 집에도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마가렛 레드먼드다. 그녀는 결혼을 하루 앞두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도망갔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런어웨이 브라이드 runaway bride였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들은 것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들은 마가렛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왜 그녀는 결혼식 전날 멀리 영국으로 달아나야 했을까?


마가렛은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19세기 말,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술대학에 진학해 회화를 공부했다. 그녀의 예술적 조예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확장되며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운다. 한편, 부모님이 정해준 정혼자와 약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큰 결심을 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삶이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님에 확신이 섰다. 결혼식 전날,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그녀는 홀연히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런던으로 갔다. 그렇게 결혼은 무산됐다.


 

                                                    마가렛 레드먼드의 50대 무렵 사진 


                                         

 만약, 그녀가 결혼을 해 그 당시 다른 여성들처럼 평범한 결혼 생활을 했다면, 그녀의 역작인 트리니티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이 예술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상기할 필요가 있는 사실이, 미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 1920년이다. 흑인 남성이 1870년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마가렛이 43살 되던 해에 여성이 투표권을 쥐게 되었다. 마가렛의 청년시절, 미국 사회의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왜 마가렛이 결혼식 전날, 결혼을 거부하고 영국으로 달아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녀가 20대였던 1880-90년대 시대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으리라.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서 사는 삶이 예술가로서의 삶과 양립할 수 없음을 알았다. 여러 날의 고심 끝에 그녀는 결혼을 깨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예술을 포기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 사는 삶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예술적 자아를 포기하고 사는 억압된 삶을 당당히 거부하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했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전 생애를 스테인드 글라스 예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보냈다.  자신의 예술적 기량을 더욱 풍부하게 갈고 닦았고 창작에 몰입했다. 그녀의 예술혼은 트리니티 교회와 뉴잉글랜드 지역의 여러 교회와 공공건물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피어났다.


마가렛은 1904년에 이 집을 구입했다. 이 집은 그녀의 예술과 다른 예술인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중심지가 된다. 그녀의 삶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예술과 창작이 늘 그녀와 함께 했으며 많은 예술인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다. 이 여름 별장에 문인들과 예술가들을 초대해 교류했다. 예술과 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즐겼다.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고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들과 함께 하며 행복했다. 이들과 바베큐파티를 하고 와인을 마시며 기쁨이 넘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근처 호수에 가서 수영을 하며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혔다.


행복한 전원생활은 그녀의 작품활동에 영감과 창의성을 불러넣었으리라. 도시와 멀리 떨어져 호젓한 시골에서 작품 활동에 열중했다. 지역 주민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마가렛은 300여명 남짓의 작은 타운의 주민들에게 100년 넘게 회자되며 타운의 자랑이 되었다. 그녀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이 넬슨 공립 도서관의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넬슨에서 아무나 붙잡고 마가렛 레드먼드에 대해 물어보며 이구동성으로 넬슨 도서관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사랑하며 그녀를 사랑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고인이 되신 시어머니의 말씀인데, 실제로 내가 만난 마을 사람들은 마가렛 할머니를 알고 그녀와 그녀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사랑한다고 했다.


이 유서 깊은 집의 여기저기에서는 마가렛이 살던 당시의 그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하실에 버려진 깨어진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들. 마치 도예가가 가마에서 나온 작품이 흡족하지 못하면 깨어버렸듯이, 그녀도 그녀의 성에 차지 않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깨어버린 듯하다. 완성된 작은 작품들을 집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집안 어느 곳에서나 그녀의 숨결, 손길, 예술가로서의 정서가 느껴진다. 그녀가 잡았던 손잡이, 문고리, 그녀가 마주하고 앉았던 벽들… 모든 것이 그녀가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9년에 낸 책  “자기만의 방에서" 여자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지니아가 이 책을 내던 시기에 마가렛은 그녀의 60대 초반을 보내고 있었다. 마가렛에게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운이 좋아 부유한 가족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에게는 돈이라는 조건은 이미 만족되었다. 결혼에 의해 강요되는 억압된 삶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방을 선택해 창작의 자유를 갖게 됐다. 버지니아의 말처럼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었기에 마가렛은 예술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120여년 전의 그녀의 선택이 잠시 내 가슴에 머문다. 자신의 결단과 선택으로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나는 오늘 마가렛 할머니의 자기만의 방에서 이 글을 쓴다.  나는 그녀의 자기만의 방에 머문다. 나는 이렇게 타인의 어깨 위에서 오늘의 삶을 살아간다. 이 시대의 모든 여성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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