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이 정도로 병원에 가는 게 맞나?’ 싶었다. 나만큼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겨우 이런 걸로 병원을 가도 되나 싶고, 이만한 일로 병원을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별일 아닌 것에 대한 나약한 내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정도 우울함은 누구나 가지고 사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공황장애로 병원은 한번 가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혀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던 밝은 친구여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근무 환경 문제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신과에 한번 갔었는데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고 회사를 관두고 괜찮아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번 마음 편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추천받은 곳들에 전화를 해봤는데 두 군데 중 한 군데는 쉬는 날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고, 다른 곳은 초진비가 8만 원이라 부담이 되어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하고 일단 끊었다. 직장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였는데, 병원도 쉽게 찾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씁쓸했다.
이후 집에 와서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앱에서 후기가 괜찮은 동네에 있는 정신과를 찾았고, 다음날 찾아갔다.
나는 정신과를 책으로 접해봤다. 프랑수아 플뢰르라는 프랑스 정신과 의사가 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시작으로 낸 시리즈 책을 좋아하는데, 그 책에 보면 꾸뻬 씨의 정신과 진료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온갖 잡동사니로 둘러싸여 있고 나는 자연스레 그런 진료실을 상상했다.
처음 방문한 정신과는 상상과 무척 달랐다. 대기실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처럼 무척 심플했다. (심플을 넘어서 살짝 휑하다고도 생각되었다.) 그리고 진료실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곳처럼 무척 정갈하고 깔끔했다.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있었고 매우 고요했다. 평화롭기보다 조용하고 엄숙한 느낌이었다.
내 차례를 기다렸고, ‘Nobody 씨 들어가세요.’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듣고, 들어갔다. 지금 생각난 건데 나는 대기실에서 중국어 공부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지 않다. 정상이다. 그냥 한번 와봤다’를 내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조금 우습다. 뭐가 그렇게 신경 쓰였을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똑똑’ 진료실 문을 두 번 두드리고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시는 머리가 희끗하신 중년 남성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조심스럽게 묻는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었는데 눈물이 나왔다. 어라… 대답 대신 눈물이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그냥 대답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눈물이 자꾸 나와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런 나를 선생님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