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를 찾아서

by Nobody

"저희 병원 처음이세요?"


며칠 전 나보다 더 우울증을 먼저 앓았던 친구와 카톡을 했다. 친구는 나에게 선생님과 환자 사이에 생기는 라포가 형성되었냐고 물었다. '라포는 또 뭐야? 세상엔 모르는 단어가 정말 많구나' 하며 찾아보니 일종의 유대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요즘 담당 선생님과 수다 떠는 재미로 정신과를 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히 선생님과 나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나 보다. 친구는 성적인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선생님과 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친구는 20~30대 남자고 선생님은 30대 여자인데, 놀랐다.


나는 담당 선생님을 나에게는 없는 큰삼촌 뻘로 인식하고 상담을 하고 있었다. 삼촌이랑 성적인 이야기를....? 절대 못하지.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를 편히 할 수 있는 30대 여자 선생님도 만나보고 싶었다.


다양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취미도 없고, 현재 성적으로 고민을 나누고 싶은 일도 없다. 그렇지만 나이가 비슷하고 성별이 같은 선생님과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고, '라포'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예전에 추천받은 30대 여성 선생님이 계시다는 정신과에 전화를 해보았다.






"네, 병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예약 좀 하고 싶은데요"


"저희 병원 처음이세요?"


"네, 처음이에요."


"아 초진 환자분들 진료는 다 끝났는데, 12월 초에 다시 연락 주시겠어요?"






당황했다. 11월 중순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예약이 마감...? 2030 여성들이 우울증을 많이 겪는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정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끝내고 당일 처음으로 정신과를 가보겠다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나의 강력한 추천으로 일단 집 주변의 정신과를 가본다고 했다.


친구는 이 정도로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사람들을 만나면 괜찮은데 다만 혼자 집에 있으면 내가 서서히 녹아드는 느낌이 들고 우는 것뿐이라고 했다. 나와 증상이 매우 유사했다. 그래서 나도 그 정도인데 가서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많이 좋아졌다고 말해줬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 밝은 느낌이 든다는 말에 이 기운은 너랑 연락을 해서 그런 거라고 말했더니 립서비스 좀 그만하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립서비스가 아니다. 가족이랑 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렸을 것을 알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고 표현을 해서 그들과 오래도록 함께 잘 지내고 싶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표현에 인색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본 지 얼마 안 된 연인에게는 덥석 덥석 잘도 하면서 부모님에게는 어색하고 민망하다는 핑계를 대며 잘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제는 엄마 아빠한테 표현하려고 하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주변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도 너무 슬퍼할 건 없다. 인터넷에 힘든 마음을 털어놓으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힘을 내라며 단문, 장문의 댓글을 쓸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를 함께 나눌 준비가 된 의사 선생님들도 우리 도처에 많이 있다. 단 하나 명심할 것은, 자신을 끝까지 놓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본인이 본인의 감정을 온전히 인정하고 공감해줄 수 있다면 라포를 찾지 않아도 그것만큼 자신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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