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죄송합니다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상어- 타인의 고통>

by 쌍둥이 아빠

대형 공연장을 만들 때의 일이다. 건축, 전기, 소방, 음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야만 했고, 상대적으로 나는 그들에 비해 무지한 상태였다.


특히, 소방 분야는 아주 예민한 영역이었다. 공연장의 각 공간마다 필연적인 행위들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상당한 화재 위험을 안고 있었다.


공연장의 특성상 건축물의 내부 공간이 아주 크고 높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했다. 또 다양한 무대장치가 얽혀있는 물리적 장애도 극복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공간 내의 공기를 분석하고 기준치 이상의 공기 성분 확인으로 화재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예민하고, 안전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관계자들이 이에 동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이 좀 달라졌다. 선택된 공법을 적용할 때의 공종별 이해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은 채 시간이 경과되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름 전문가의 권위에 기댄 교양 있는 포즈였지만, 공공사무에 대한 무능과 결정 장애를 사안과 관계없이 거론하는 형태의 무례함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담당 공무원이 돈이라는 예의를 갖추어 전문가들을 예우하듯이, 당신들도 내게 최소한 합당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라 경고했고, 관리 감독 권한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겠다는 엄포도 놓아야 했다.


퇴근 후 잠자리에서도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나의 영역에서 나만큼 전문적일 수 없는 것 아닌가. 무릇 전문가라고 타인을 향한 예의를 갖추지 않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아가 인간 이하의 모든 일들은 동등함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공공의 정의 아니겠는가!


나는 비로소 정의로운 명분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무례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기필코 나는 스스로를 정의로운 공직자의 반열에 올려두었다. 그들의 속됨을 조망할 수 있는 나의 권위가 못내 자랑스러웠다.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다.


그러나 아침이 오고, 출근을 하자 모든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진실로 나는 그들보다 우위에 있지는 못했다. 그저 공공의 종사자라는 정신적 우위를 홀로 점하였을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많은 일들이 그랬다. 부끄럽고 옹졸한 정신 승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 일들이 많았다. 또한 정신 승리의 이면에는 근거 없는 권위 의식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시민들을 향한 공공의 언행은 또 얼마나 위험한 수준이었을까. 우리들은 얼마나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것일까. 교양 있는 행정가들의 포즈가 얼마나 무례했을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소위 행정에 미숙한 사람들, 혹은 대부분의 주민들을 향한 나의 마음도 너무나 무례한 것이었다. 그들 입장의 상식적 판단과 요구에 대해 상식 이상의 대화를 요구해 왔으며, 주민들의 요구가 이기심이나 무지함 때문이라 짐작하며 그들을 멸시한 적도 많았다.


나라는 공직자는 언제나 더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해온 것이다. 알량한 권위에 기대어 같은 바다에 있는 사람들의 사정과 슬픔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고, 인정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사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수한 비명 소리 - 타인의 고통 1


우워어억

팔리지 않는 닭이 가득 쌓인 소망닭집

가래 끓는 비명 소리와 함께

굵은 통나무 닭 도마에

시퍼런 칼이 통째로 꽂혔다

시장의 골목은

밤새 이러한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어떤 이는 끊지 못한 술로 신장이 녹아내려 업종을 장의사로 바꾸고

어떤 이는 간장이 녹아내리자 마음이 갈 곳을 잃었다고 했다

릴레이로 깨어나 담배를 무는 피로한 밤과

퇴색한 몸뚱이만 바라보며

그들의 시간은 과거에서 멈추었다


잠든 아내와

몇 송이의 작은 꽃들

아침이 오자

빈 병을 훔친 작은 꽃들이

닭 도마에 꽂힌 칼을 뜻 없이 바라본다


꽃들의 비명 또한

다가올 과거에 울려 퍼진다




나도 모르는 그대 - 타인의 고통 2


가보지 않은 산

인적이 드물어 지워진 길

걸음이 빨라진다

날벌레 잡목들이 허벅지를 휘어 감는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

비켜라, 어서 비켜라, 나여


걸을수록 고요하고

고요할수록 멀어지는

봉우리


봉우리를 다 올라도

다가오지 않는 산


더 깊은 산으로 가려고,

어두운 바위에 앉아 기다린다


기다릴수록 선명해지는

새소리, 바람소리

약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가늘고 떨리는 흰 손이

등 뒤를 두드려 부르는 소리


기어이, 동트지 않은 방으로

나를 살려 돌려보낸

나여, 가여운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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