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우리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지역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미래를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남들이 말한다.
매일매일 바빴다. 뭐든 관계되지 않는 일이 없었고, 수없는 결정과 판단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말했다. 나는 어쩌다 이다지도 좋은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사실은 운이 좋았다. 조직엔 늘 두 명의 훌륭한 사수가 있었다. 한 사람은 자기 일을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유능하고 차가운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의 사수는 남몰래 나의 능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무능하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두 명의 사수에 힘입어 나는 소위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는 사람. 경력에 비해 업무 처리가 능숙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타고난 부끄럼 또한 겸손이란 덕목으로 잘 포장되었다. 초임지에 근무한 지 2년여 만에 본청으로 발령받았다. 나와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다.
한번 괜찮은 경력을 쌓고 나니, 다음의 괜찮은 자리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어느새 조직은 항상 잘해 낼 것이라 응원했고, 주변인들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갈수록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좀 우쭐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20년 동안 과연 행복했을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업무량과 난이도는 조금씩 한계 이상이었고, 한계를 메우기 위해 시간과 정신과 체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때로는 여러 방면의 개인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가혹한 일상이었다.
결국 몸과 마음이 소진되고 있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조직과 주변인들의 응원과 격려도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간의 살아옴이 무위로 돌아갈까 무서워졌다.
요즘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말한다. 좀 내려놓아라. 몸 생각해라, 이만하면 충분하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들이 내게 충고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다.“너 자신을 찾아라.”일 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상 앞에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게을러져야 하는 것인지, 뻔뻔해져야 하는 것인지, 외면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말과 행동을 취해야 나는 조금더 나 자신에게 충실해질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이런 고민을 직장생활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하게 되는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사춘기도 아닌데.
나 자신을 찾는 일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오래 생각할수록, 자기 자신을 고쳐 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일에 경계를 그어야 하며, 말과 행동, 태도와 표정을 새로이 선택해야만 했다. 심지어 오래된 사람과의 관계도 새로이 판단해야만 했다. 불편하고,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본래의 나라는 존재가 있긴 있는 건지도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일상은 지속되어야만 했다. 의지 밖의 영역에서 나를 담아 무심히 출렁이고 있는 이 일상을 두고 오로지 나의 행복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 나 자신을 찾기는 커녕, 가라앉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헤엄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부레 없는 상어처럼
살아 있는 한
헤엄쳐야 하는
저 사나운 짐승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평화롭고도 타고난 부력이 없으니, 일상과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감내는 피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최소한 또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겐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평범과 작은 행복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잠시의 멈춤도 허락하지 않는 생은 또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살아옴 대로 사는 것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 일일 것이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타고남이, 살아옴이 그리된 것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을. 사실은 이제까지의 살아옴 모두가 나 자신이었던 것을. 이제까지의 나와 다른, 본래의 내가 도저히 발견되지 않는 것을. 그런 나는 애초에 없었던 것을. 지금의 내가 본래의 나인 것을.
가혹한 일상과 노동의 현장에서 일생을 사납게 헤엄치는 이들에게. 그저 배려와 휴식이 필요했던 그들에게. 과거의 우리 또는 현재의 우리는 어줍지 않게 본래의 자아 또는 행복 타령이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어리다, 약하다, 간혹 잘못짚은 충고만 들이댄 것이 아닌지. 혹은 감히 가엽게 여겨온 것은 아닌지.
그저 묵묵히 헤엄치며 일렁이는 일상에 담겨 사는 저 성실한 동료들. 그들을 살피고 다독이는 일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키우는 일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 의미 있고 위로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또한, 그러한 이해와 공감이 조직과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제도와 방침으로, 또는 관습으로 예언처럼 자리 잡아 준다면, 그저 그리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 의지로 오래오래 남아준다면 더더욱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금도, 야근에, 육아에, 가족 된 도리에, 부질없는 음주에 지친 나의 동료들. 일상과 노동의 현장에서 저 자신과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 잠시도 사나운 헤엄을 멈출 수 없는 부레 없는 우리들.
당신들께 공감을 전한다. 나 역시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없었노라고. 그저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한편 마음 편했노라고. 그래도 그대들로 인해 나의 세상은 위안되고 있노라고.
그리고, 그리고, 그간 그대의 살아옴에 무한히 감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