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평행선도 만나는 나라>
1. 징조
군자사거리 길을 걷는다
맑게 눈을 뜬 아이
아장아장 등짝을 후려친다
놀라 돌아본다
아이는 슬쩍 웃어 보이며
뒷걸음쳐 달아나 버린다
홀로 걷는 등 뒤로
서늘한 무언가가 따라온다
2. 오른팔의 기억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왼팔이 사라지고 없었다
손가락은 움직여지지 않고
무시무시한 천정(天井)만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당황
왼팔이 사라졌음을 느끼는 순간의
그 홀가분함
아, 나는 그때 왜 그런 무시무시한 천정(天井)이 되어 있었을까
3. 병증
개나리 지고 진달래 지고 벚꽃 목련 만나지 못하고
아카시아를 찾아 오르는 산길
아카시아가 없다
꽃과 친한 왼팔이 없다
기 우 뚱
봄이 기운다
이산을 돌아 헤매이면
평행선도 만나는 나라에 갈 수 있을까?
내년, 내년, 그 이후 더 먼 아카시아에게로
4. 왼팔의 기억
음악이 너무 경쾌했다
몸뚱이에서 떠나오던 그날은
오디오 스톱 버튼을 누르고
무심히 올려다본 천정(天井)에는 무시무시한 얼굴이 눈을 감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팔뚝만 한 쥐의 꼬리가 감기는 소름
아직도 그것이 꿈인지, 환상인지, 그림자인지 알 수 없다
쏟아지는 차가운 비
시멘트 바닥, 어느 하수구 아래에서
뜻대로 떠나온 것도 아닌데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아직 왼팔이 아니었을 그 먼 빗속으로
자꾸만 나는 사라져 간다
5. 묘지목(墓地木)의 기다림
지루하다 지루하다 지루하다
떠도는 영혼들의 사연을 듣는 일도
산토끼, 노루들의 똥 싸는 모습도 지루하다
그러나 나는 지키고 있다
낯선 꽃송이가 피어나고
해가 뜨고, 달이 울고, 별이 진 후의 생을
그대가 머물 이 땅 이후의 시간을
나는 지킨다
그러니 그대 오늘만은 잠들 수 있기를
다시 한 쪽 팔이 사라지는 따위의
악몽은 꾸지 않기를
무엇보다 그대 자신을 믿기를
나는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