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 - 제3부 가족>
어린 시절 폐렴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생긴 지병이 오십을 넘기며 지독하게 어머니를 괴롭혀 왔다. 병이 깊어지면, 자기 몸에 든 병을 슬프게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그것을 신병비관(身柄悲觀)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늘 슬퍼하셨다.
살을 얼리는 추위를 이겨내며 오일장에서 야채를 파셨고, 배움이 없는 생으로 슈퍼마켓을 간신히 해내었다. 아버지는 늘 어머니를 때렸고, 눈앞에 칼처럼 무서운 말을 뱉어 내기도 했다.
살아계신 어머니의 방에는 간혹 유서가 있다. 나는 그 유서를 보고도 모른척했다. 또 어느 날에는 어머니 방에 딸린 욕실에 빨랫줄이 매여 있기도 했다. 너무 무서워 아는 척할 수 없었다.
또 어머니는 간혹 내게 모질고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그저 병의 증세임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 참기 어려웠다. 늘,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어머니와의 관계가 슬프고 힘들었다.
나는 때로 어머니에게 하면 안 되는 말도 뱉어내고 말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는 나의 길고 긴 원망을 못 들은 척하셨다.
어머니가 또다시 생사를 다투고 계신 어느 날, 삼남매는 어머니를 병원에 홀로 두고 빈방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원망과 슬픔, 기적과 다행이 교차했다. 모두의 삶이 서로 조금씩 다른 아픔으로 채워져 있었다. 작은누나의 입술이 강물처럼 일렁였다.
길고 긴 투병의 끝에선 간병 가족들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다. 컴컴하고 긴 동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가족들의 우울에 공감했다. 해법은 없었다. 그저 끝까지 겪어내는 수밖에.
나는 아직도 하루 중의 찰나든 찰나 이상이든 우울과 불안에 시달린다. 어머니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믿는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또한 그리움이 될 것임을 믿는다.
들마루에 앉아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 맑던 웅덩이처럼. 슬픔은 앙금으로 가라앉고 그리움만이 곱게 떠오를 것임을 믿는다. 생에 가장 따스했던 단 한 장면만 남아 기억될 것임을 믿고 또 믿는다. 믿어야 살 수 있다고 믿는다.
※ 2025.10.1. 아침 어머니는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로 떠나셨다. 밤새 병실을 지킨 후 잠시 작은 누나와 교대한 찰나. 엄마 나 잠깐 집에 옷갈아 입고 올게요. 그래 다녀와. 내가 샤워를 하고, 라면을 먹고, 식탁에 젓가락을 탁하고 내려놓는 순간. 어머니는 생을 멈추셨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도 마치 어머니가 집에 계신듯했다. 오늘은 목소리가 어떠신지 전화를 해야 할 듯했다.
엄마가 제일 힘들었잖아.
엄마 미안해.
사랑하는 영희씨
안녕, 안녕, 안녕
환자는
밤새 사력을 다했다
들끓는 가래 사이로
쇳 숨을 쉬는 것도
힘겨이 뒤척이는 것도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 조차
이 아픈 생을
그만, 멈추기 위한 것이었다.
못돼먹은 아들은
환자 곁에 누워 쪽잠을 자고
아침 교대 시간을 가늠하였으며
샤워할 생각과
라면을 먹을 궁리를 하며
끝끝내,
살려고 하였다.
험한 길가에 크고 외로운 돌이 박혀 있어 내내 마음이 쓰였으나, 가던 길이 있어 쉬이 외면하고 말았다. 폭풍우가 창을 치던 어느 밤 해괴망측한 걱정에 서둘러 길가에 나가 보았으나, 이미 그 크고 외로운 돌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커다란 돌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황망한 마음에 큰 돌이 패인 자리에 앉아, 덜 마른 흙을 걷어내자 아주 작고, 둥글고, 단단한 슬픔이 잉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