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믐 Apr 28. 2022

6일 차

2022. 04. 28

Q. 지금의 당신을 상징하는 어릴 때 사진이나 증거가 있나요?

마리의 첫 동시 편지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처음 동시를 편지로 써보았습니다. 정말 창의적이죠.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나는 100일부터 말을 했고, 3살 때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고 해요. 내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 책이 [아기돼지 삼 형제]였습니다. 나는 편지를 쓰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여 내가 글씨를 배운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엄마와 아빠와 온갖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었나 봅니다. 그 버릇은 내가 런던에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죠. 중고등학생 때에도 가장 친한 친구와 하루에 몇 통이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런던으로 간 이후로는 편지를 쓰고픈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혹은 그 사람을 위한 편지는 내가 기쁘게 쓸 수 없는 편지가 되었습니다. 


Q. 당신은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나요?
가문이라는 단어가 웃기군요. 나는 아주 순수한 마음을 가진 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을 겁니다. 엄마는 아직도 나부끼는 꽃잎에 마음이 일렁이고, 아빠는 신이라는 존재를 아주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렇게 여리고 서툰 두 사람은 모두 글과 글씨를 참 잘 썼습니다.


Q. 당신의 가문에 대한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나요? 그것이 당신에게 자부심을 갖게 했나요?

외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다고 해요.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선남선녀가 따로 없죠. 그가 그렇게 급하게 떠나버린 게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Q. 당신이 기억하는 조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나는 외할머니와 꽤 각별합니다.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그녀와 보냈고, 그녀는 나에게 형제이자 친구이자 부모가 되어주곤 했죠. 나는 새벽에 그녀를 깨워서 퍼즐을 맞추자고 조르기도 했고, 내가 계란 심부름을 갈 때면, 그녀는 내가 혹여 넘어질까 봐 몰래 숨어 내 뒤를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려 하려다 내 코피를 터뜨리기도 하고, 내가 동생도 없다며 마구 놀려대기도 하였지요. 나에게 먼 길을 돌아 두 번째 심바를 데려다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내가 커오던 어느 날에 그녀는 자신의 딸에 너무도 큰 마음을 써버리게 되어 나를 외롭게 하기도 하였지요. 그녀는 아직 나를 잊지 않았지만 많은 기억을 홀씨처럼 날려버리고 있다고 합니다.


Q. 그분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나요?
위에서도, 전에도 그녀가 많이 언급이 되었네요. 나는 또 그녀가 해주는 시래깃국과 고구마 줄기 볶음이 참 그립습니다. 내가 어릴 적엔 그녀는 설에 한복을 차려입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만두를 빚는 모임을 주선하기도 하였죠. 나는 그녀의 집에서 호랑이 무늬의 담요를 덮고 TV 만화를 보면서 새우깡을 먹다가 불개미에 손가락이 물렸던 적도 있습니다. 나는 그녀와 고등학생 때 한 방을 쓰는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미술학원이 끝나고 늦은 밤 집에 올 때면 그녀는 늘 나를 마중 나와 학원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맞이해주었죠. 그리고선 너구리에 계란을 맛있게 풀어낸 라면을 차려주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정말 미워했던 적이 있는데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에게 날을 세우고. 다음 날 해가 밝아 쭈뼛쭈뼛 그녀에게 사과를 건넬 때면, "한잠자고 일어나면 다 잊는 거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에게 정말 가족이 있다면 아니 있었다면, 그녀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