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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Apr 27. 2022

5일 차

2022. 04. 27

Q. 다른 사람이 당신을 부를 때 주로 사용하는 호칭은요? 그 이유는요? 그 호칭이 당신은 좋으세요?

나는 나의 본명으로 불리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솔직히 무엇으로도 불리고 싶지 않아요. 나를 알되,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부르지 않고도 내가 그들이 나를 부르는 것을 알고, 그들이 나를 부르지 않고도 나와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지금 당신에게 가장 큰 소원은 무엇인가요?

나는 언제 어디서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 누구로 인해서든 결단코 좌절되지 않기를,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순간에 행동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실 그게 가능하다면, 내가 무엇을 가졌고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을 것만 같아요.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거든요. 나는 매 순간 고도의 몰입 상태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있을 겁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내가 창조해낸 것들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진리'라는 것과 그 속성을 같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당신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날이 있다면 언제, 무슨 날인가요?

내게는 낭만이 있었습니다. 내게 낭만이란 결여와 결핍을 가지고도 그것이 없는 마냥 행복한 척 슬프게 웃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낭만입니다. 상처를 지니고서는 절대로 온전히 행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오는 낭만입니다. 어떤 외로움이고 어떤 쓸쓸함이며 어떤 그리움이고 어떤 기다림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기념비적인 날은 내가 그것을 버린 날입니다.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낭만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었지요. 그날은 2020년 3월 혹은 4월의 어느 날입니다. 다짐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경험한 날, 나는 굳게 또 굳게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겠노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살겠노라고 다짐했지요. 그날 이후로 나는 눈에 띄게 잘 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오래 품었던 '낭만'이라는 습관이 관성으로 남은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나는 낭만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예전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Q. 당신이 살아오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것이 꿈이었노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 꿈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환상의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닌, 내가 잠든 사이 영혼이 잠깐 놀러 갔다 오는 꿈을 말하죠. 꿈에는 언제나 내가 오늘 나라는 몸뚱이를 가지고 경험했던 감정들, 미처 흘러가버리지 못한 감정들, 저항이 덕지덕지 붙어 커다랗게 몸집을 불려버린 감정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꿈이 무엇인지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 더 지혜로워졌을까요?

문득, 내가 슬픔을 느낄 때는 나의 영혼이 슬픈 것인지, 나의 마음(혹은 정신)인지 궁금해집니다. 


Q. 당신이 내남할 것 없이 강조해온 덕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최근에 책임감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었죠. 나에게 책임감은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를 주었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하는 것까지가 나의 책임감에 포함됩니다. 피해를 줄 것 같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물어보고 합의를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최근에 나의 기준에서 무례한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성을 잃은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나의 에고를 발견합니다. 나는 Thank you와 Sorry와 Excuse me를 가장 많이 하는 민족이라고도 불리는 영국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나에게 한국 사람들은 더더욱 무례하게 느껴질 때가 많죠.

한 번은 고속버스에 탔는데 앞 좌석과 뒷 좌석의 블라인드가 하나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창밖의 산청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앞 좌석의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블라인드를 내리더군요. 나는 그녀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내 쪽에 있는 블라인드를 비스듬히 올려서 약간의 틈새로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뒤를 돌아 자기가 잠을 자야 하니 블라인드 좀 똑바로 내리라고 하더군요. 만일 내가 그녀였다면, 죄송하지만 너무 피곤한데 눈이 부셔서 잠시라도 블라인드를 내려두어도 괜찮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을 겁니다. 조금 인간미가 없는 버전으로는 30분은 블라인드를 치고, 30분은 걷자며 제안을 했을지도요.

오늘은 하필 시내버스에서 앞뒤로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의 정 가운데 자리에 앉아버렸지 뭔가요? 나는 추워서 내 앞에 있는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 창문이 열려있든 닫히든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것은 제 자리뿐이니까요. 뒤에 앉은 아주머니는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뒤쪽 창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혔습니다. 그 바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나임에도요.

살면서 '하지 말아도 될 말을 너무 많이 했던', 또 '꼭 해야 할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때로는 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돌아봅니다. 어른으로 익어간다는 것은 꼭 해야 할 말을 누구도 아프지 않게 건넬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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