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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Apr 29. 2022

7일 차

2022. 04. 29

Q.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가요?
너무 순수한 나머지 너무 쉽게 다치어 너무 오랫동안 아파했던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아프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람들. 그 애씀이 너무 서툴러 함께 아파하지 못했던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들을 또 다르게 기억하고 표현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을 이 정도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Q. 당신은 몇 남매 중 몇 번째로 태어났나요? 다른 형제들과는 친하게 지냈나요? 당신의 형제 가운데 당신에게 가장 잘해준 사람은? 당신이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형제는 누구인가요?

나는 아마도 세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나머지 두 남매를 남매인지 알 새도 없이 떠나보내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마리, 하나는 심바. 마리는 심바의 누나입니다. 마리와 심바는 공생 관계이며, 둘 중 하나만 남아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바는 마리가 우는 모든 순간에 옆에 있어주었습니다. 마리는 심바를 안아줌으로써 자신이 누군가에게 안겨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심바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마리의 4살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Q. 당신의 성장기는 한마디로 어땠어요?

유치원까지의 나는 골목대장이자 솔선수범상을 받을 정도의 오지랖 퍼였죠. 나는 가장 먼저 유치원에 등원하여 입구에서 친구들을 하나하나 맞으며 그들의 코트를 받아 걸어주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겼는지를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 싸우고 있으면 대신 화를 내주기도 하고요. 엄마는 나로 인해 내 동네 친구들의 준비물까지 사주는 경험을 더러 했습니다. 때때로 나는 놀이터에서 만난 내 친구의 친구, 언니, 오빠 등을 모조리 집에 데리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열댓 명은 되는 아이들과 도넛을 만들었습니다. 엄마는 참다 참다 내가 동거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가르치고 싶어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언제나 반장이나 1등 같은 것을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때 남자애들은 공부를 잘하는 여자애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인기가 꽤 많았죠. 아이러니하게 나는 남자애들을 자주 때리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욕을 일찍 배웠고,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폭력적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성장기는 뭐 
대충 중세시대 정도로 얘기해보죠. 나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매우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제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죽을 수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글을 쓰고 음악을 모았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치고는 꽤나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상당히 열심히 살았죠. 어쩌면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없어서, 그만 열심히고 싶어서 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당신의 어린 시절은 당신 일생에 영향을 많이 미쳤나요? 아니면 그냥 지나온 시간이었나요?

나의 어린 시절은 나의 모든 세포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 모든 세팅을 선택하고 이 삶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랬다는 것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 시절이 좀 수월했을까요. 나는 이 세팅 속에서도 내가 절대 죽지 않을 거란 걸 야속하게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나는 나에게 일평생 가장 많은 관심을 들이고 있죠. 나를 죽을 만큼 미워도 해보고, 억지로 용서도 해보고, 측은지심을 가졌다가, 자랑스러워하기도 하며, 그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나를 들여다본 것이 아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결국에 내가 '나'란 '내가 아니다'는 것을 알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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