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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Apr 30. 2022

8일 차

2022. 04. 30

Q. 지금도 어제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어린 날의 장면들은 어떤 게 있나요?
Q. 혹시 잊히지 않는 그 장면들 간에 공통점이 있나요?

어린 날은 언제까지가 어린 날일까요. 어제처럼 뚜렷하게 기억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어제처럼 뚜렷하게 내가 버림받는 수많은 장면들을 기억합니다. 그제처럼 뚜렷하게 내가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장면들을 수많은 기억 합니다. 며칠 전처럼 뚜렷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많은 장면을 기억합니다. 몇 주 전처럼 뚜렷하게 내가 예쁨 받는 몇몇 장면을 기억합니다. 

나는 오히려 오늘의 어제나, 그제, 며칠 전도 몇 주 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Q. 당신의 어린 시절을 특징짓는 사건이나 상징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선 여러 질문에 나누어서 대답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전의 시간에 국한하여 얘기하자면 뽀글거리는 삼각김밥 머리에 앞니 2개 정도는 빠진 채로 선글라스를 끼고 배시시 웃는 모습. 


Q. 어릴 때 책이나 영화 여행 등 문화를 다채롭게 체험했나요?

우리 엄마는 태교로 클래식을 듣고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내가 기어 다닐 수 있을 때부터 나는 카세트의 플레이 버튼을 눌러 클래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 청음이라는 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그게 나에게 딱히 득이 된 적은 없습니다.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밤이고 새벽이고 나는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는 정말 수많은 책이 있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엄마는 빚을 내서라도 나에게 다양한 것들을 경험시켜주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다섯 살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여섯 살 즈음엔가 전국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또 미술학원과 같은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이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너무 갖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 당시 대부분의 피아노 학원 가방은 브리프케이스(서류가방) 같은 형태로 생겼는데, 남색 캔버스 천과 그 가장자리에 빨간색 띠가 둘러져있고 하얀색 글씨로 '샛별피아노학원'이라고 쓰여있는 가방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꼭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집에서부터 엄마 손을 잡고 마구 상가로 뛰어갔죠. (엄마는 내가 정말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나는 다섯 살부터 약 10년을 마치 피아니스트가 될 사람처럼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배우기도 했고, 플루트를 한 2년간 배웠으며, 크면서 기타나 드럼도 집적대 본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갑작스러운 이사로 피아노를 데리고 올 수 없게 되며, 나는 미술을 공부하면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다시 중학교부터 미술을 배우고 심미적 감각이 중요시되는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에는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도 두어 번 다녀왔고, 중학생 때는 런던에서 1년 정도를 살아보기도 했죠. 런던에서는 플루트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본 적도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까지 외삼촌의 주도로 휴가를 자주 가곤 했는데, 외삼촌은 대관령을 넘어 '악'이 들어가는 산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유당불내증이라는 것을 최근까지도 몰랐던 엄마는 매번 빈속에 우유를 먹여 대관령을 넘게 했고, 나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삼촌차에 흔적을 남겼지요. 그래서인지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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